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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quixote Doflamingo

X

 Mermaid

< 돈키호테 도플라밍고X인어 >

 

                                                       

 

                                                                                                                                       -도리스-

 

 

 

너는 하늘을 달리고 나는 바다를 걷는다.

바다에서 태어나 푸른 하늘을 동경했다. 네가 있는 그곳을 동경했다.

 

도플라밍고, 칠무해 드레스로자의 지배자 군주 독재자 존경받는 당신

내가 사랑한 남자

인어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창문 틈으로 옅게 들어오는 빛이 눈이 아프다.

당신도 나처럼 눈이 아픈 걸까, 그래서 이렇게 선글라스로 반짝이는 눈과 예쁜 속눈썹을 가리는 걸까. 인어는 의자에 큰 몸을 구겨 넣고 잠든 남자의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린다.

남자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인어는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고는 그의 눈치를 살핀다.

 

언제부터 깨어있었어요?

 

여자가 우물거린다. 도플라밍고는 하얗고 긴 예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매만진다.

사실은 인어가 수조에서 나올 때부터 깨어있었다. 하지만 도플라밍고는 입꼬리를 예쁘게 올리고 익숙하게 거짓말-여자가 바라는 대답을 한다.

 

방금

 

 

-

서로에게는 거짓말이 익숙하다 아니 정확히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편하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심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안도할 것이고 당신도 편할 것이다. 내가 당신의 진실에게서 도망쳐 닿지 않는 푸른 바다 사이로 숨어버리지 않을 테니.

 

-

어딘가 어색한 여자의 모습에 도플라밍고의 눈이 가늘어진다. 너와 내가 ‘우리’였던 것에 자연스러웠던 게 언제였던가. 생각나지 않는 과거를 간절히 바라는 미래 속으로 밀어넣고 시선을 수조로 돌린다. 큰 보폭으로 수조 가까이로 다가간다. 자신의 연인을 곁에 잡아두기 위한 새장에 손을 올린다. 더운 날씨 탓에 물이 조금 식었다.

 

물을 갈아두라고 하지, 그동안 산책이라도 하고 오는 게 어때

 

널 위해 지은 내 성을 보여주고 싶었어, 널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 성안의 수영장은 너의 것이었어. 이렇게 작은 수조가 아니라 널 내 수영장에서 마음껏 놀고 해주고 싶었어.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울컥이는 그를 검은 큰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던 인어는 제안을 가볍게 거절하고 조금의 틈새로 애매하게 빛이 쏟아지던 창문을 활짝 열고 아래의 소파에 널부러진다.

 

여기면 바깥구경은 충분하니까

 

빛이 사납고 쨍한 정오가 지나 기세가 약해진 햇빛과 약간은 더운 바람이 인어의 젖은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빗고 건조하게 지나간다.

인어는 후각이 예민하다.

음식 냄새와 사람 냄새에 섞인 비리고, 향긋하고 그리운 향이 가득 담긴 바다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도플라밍고가 뒤돌아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러할 것처럼 도플라밍고에게서는 짙은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훅 풍겨온다. 그의 튀는 털옷이 그를 가리듯 털옷에 흩뿌려진 조잡하고 인위적인 향들은 그의 본능처럼 배어있는 냄새를 덮는다.

 

창문이 너무 커 위험하겠어.

 

정말요? 열린 창문으로 새처럼 날아 도망갈까 두려운 건 아닌가요?

인어는 그저 빙긋 웃었다.

 

-

인어와 남자는 그들만의 연극을 했다. 그리고 작은 게임을 곁들였다.

 

-

남자와 인어가 만난 건 당연했다.

숨 쉬듯 자연스레 만나 서로의 곁을 내어주고 알아가며 사랑했다.

인어의 예민한 후각도 그 때는 별 수가 없었던 지 아니면 무언가가 장난을 쳐 둔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녀에게서 진실을 앗아가 숨겨버렸다. 장난스런 아이처럼

 

인어는 빛나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 넓디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들 정든 고향을 포기하고 그의 곁으로 올라왔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게 자신의 운명인 듯 했다.

 

한편 남자는 초조해졌다.

연인이 뭍에서 꽃을 피웠고 뿌리를 내렸다. 그녀를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그녀에게 뭍에서의 자신의 옆자리를 주고 싶었다. 남자는 왕이 되고 싶었고 그녀를 여왕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조커였을 뿐이다.

 

남자가 몇 명의 사람을 죽이든 어떤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든 인어는 외면했었다.

마치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되기라도 하듯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바다를 떠난 이기적인 인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실을 들이밀었다.

 

도플라밍고에게서는 인어의 냄새가 났다.

자신의 것이 아닌, 그리고 약간의 인어의 피 냄새

 

그리고 거짓된 평화는 끝이 났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수조에는 약간은 시원하고 투명한 물이 가득 채워진다.

푸른 바다의 일부도 떼어내 버린다면 그저 물일뿐이라는 말하는 듯 커다란 수조에 들어찬 물이 한없이 투명하고, 공허했다. 텅 비어버린 인어의 눈처럼

인어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자신의 목숨 줄을 질기게도 이어가는 수조를 바라본다.

자신을 단단히 잡아 쥐고 놓아주지 않는 그처럼, 수조는 그의 마지막 변명과 같았다.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널 위해서.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인어는 숨이 콱 막혔다.

당신의 기대에 부응해줄게요. 내가 당신을 미워해도 날 사랑해주세요.

여자는 몸을 일으켜 수조 가까이로 다가갔다.

도플라밍고가 했던 것처럼 수조에 손을 올려본다. 넘친 물의 물방울이 방울방울 매달려있다.

 

물이 참 맑네요.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간다.

침묵이 둘 사이를 덮쳐오고 시선을 느낀 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도플라밍고가 여자를 빤히 보고 있다. 그는 인어가 사랑하는 바다를 닮은 눈동자와 길고 예쁜 금색 속눈썹을 드러낸 체 지는 해가 내는 빛이 바스러질 듯 여자를 감싸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서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인어는 흠칫 놀라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에는 산책이 하고 싶어요.

 

혼자는 위험해, 적어도 한사람은 데리고 가

 

같이 가요, 우리

 

도플라밍고의 눈이 커졌다가 눈꼬리가 접히며 휘어진다.

 

원한다면.

 

-

그날 밤에는 달이 유난히 예쁘게 떴다. 환하고 밝고 크게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밤바람에 인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밤에는 모두가 집에 돌아간다.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걷는 건 한 쌍의 연인뿐이다.

 

오늘은 달이 참 밝네요.

 

인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달빛이 스며든 인어의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바람이 때맞추어 선선하게 분다.

 

둘 사이에 조용하고도 작게 내려앉은 평화가 그의 성에 찾아왔다.

꽃은 피었고, 여전히 떠들썩하고 여러 냄새들이 섞여 어지러이 바람을 타고 놀았다.

 

인어는 남자에게 그 전처럼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였다.

도플라밍고가 그간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이 거짓말처럼 녹아버리고 3층 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는 날카롭고 사나운 화약 냄새 대신 인어가 좋아하는 바람에 타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들로 환기되었고 인어가 내뱉는 향기로운 숨이 3층 방을 가득 채웠다. 그동안 인어는 전혀 수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달콤한 이야기들과 웃음, 평화가 익숙해질 무렵.

정말 간만에 인어는 수조 속에서 날개를 활짝 폈다. 연한 색의 비늘들이 물을 머금고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도플라밍고는 인어가 수조에 들어가 있을 때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여자가 물 안에서 춤추듯 헤엄치는 것을 가만히 보고는 했다. 도플라밍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거짓말같이 말도 안되는 여유로움이 느껴지자 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인어의 크게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잠이 들 정도로.

 

-

깊게 잠든 사자가 깨었을 때는 푸르스름한 빛이 비스듬히 열린 창문으로 스며들어오고 비가 내려 흙의 숨 냄새가 전해오는 모두가 잠든 정말로, 정말로 평화로운 새벽이였다. 아직까지도 3층 방에는 조용히 내려앉은 평화가 잔잔히 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뜬 새벽,

인어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의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

긴장을 푼 사자가 깊게 잠듦을 확인한 인어는 조용히 옷을 걸쳤다.

버석거리는 옷을 걸친 인어는 사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서 그녀는 한 마리의 사슴이였다.

난 어제 봤어요, 사슴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사자를..

사슴은 언제 물릴지 모르는 목덜미를 사자에게 고스란히 내어주었답니다.

인어는 눈을 꼭 감았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사랑을 그의 입술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건조하고 얇은 그의 입술위에 인어의 젖은 감정과 입술이 망설임을 가득 품고 내려앉고, 인어는 크고 갈라진, 그처럼 상처가 가득한 손을 꼭 붙잡았다.

인연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상처 가득한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거짓말이 익숙해진 지금이 무슨 소용일까.

인어는 커다란 문고리를 잡았다. 쇠로 만들어진 문고리가 서늘하고 묵직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무거운 것은 뿌리를 내렸던, 이제는 떠날 자신의 발걸음이었다. 인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았다. 사랑하는 연인은 잠 들어있었고 잠에서 차라리 깨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고 인어는 차가운 문을 닫고 그 뒤로 사라졌다.

 

 

인어는 돌아올 터였다. 연어가 제 집을 찾아 돌아오는 것처럼 생의 끝은 그에게 바칠 마지막 선물이었다. 내 사람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성을 벗어난 인어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갑갑한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필요이상으로 컸던 망토가 바람에 흩어지고 긴 머리카락이 드러나며 자유롭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흰 발가락 사이로 길고 짧은 풀들이 앞 다투어 스쳐지나가며 잠에서 깨어나던 이슬들이 인어의 발과 발목을 적셨다. 생명의 기운이다. 인어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죽은 돌들의 침묵 대신 자유롭게 땅과 이야기하며 살아온 이들이 깨어나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인어야 어딜 가니

인어야 내 열매가 마침 너에게 딱 맞게 익었단다.

인어야 이리 와보렴

인어야 얘야

인어야..

 

대답을 해줄수 없어 내겐 그럴 시간이 없단다.

원망스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왕이 깨어날 시간이었다.

그녀의 왕이 새장이 비었음을 알 시간이었다.

 

인어는 힘이 약한 다리에 마지막 기운을 쏟았다.

곧 바다야, 그리운 내 고향, 내 근원, 내 어머니

인어는 눈물을 흘렸다. 진주가 되어버린 눈물이 땅에 차가운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그가 자신에게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세차게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다로 들어가면 사라져버릴.

 

그가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가 오고 있다.

 

파도조차 잠든 고요한 아침바다가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바다에 들어오면 모두 잊을 수 있단다 어린 새야, 작은 새야 지금 망설임이 부질없이 느껴질 만큼 넌 자유롭고, 또 자유롭겠지.

살아있는 느낌을 너에게 선물할게 그러니 딱 한번만 내게 안겨보련.

 

한발자국이었다.

하지만 그가 온다면 이 한발자국조차도 무용지물이겠지.

그는 하늘을 날아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인어는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아프고 괴롭고 이별하고 싶지 않아 바다가 그리워..그가 미워

문득 발끝을 스치는 작은 풀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제 향기가 어떤가요. 작은 꽃이지만 이렇게 피어있답니다.

인어인 당신이라면 작은 들꽃인 제 향기라도 맡을 수 있겠죠

 

인어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자신의 방에 매일 꽂아두는 작은 꽃다발 중 가장 작은 꽃이었다.

이름조차 모르지만 매일 꽃다발에 들어있던 아주 작은 꽃이었다.

 

인어는 작은 꽃을 옮겨 심었다.

파도가 조금만 세게 친다면 꽃이 바닷물에 쓸려버릴까, 작은 변덕이었다.

그리고 꽃을 옮겨 심고 옆에 쭈그려 앉았다. 흰 원피스가 흙에 더러워졌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았다.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인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그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내 곁에 있어줘.

 

사망선고와도 같은 고백이었다.

같이 돌아가자.

 

인어는 쭈그린 채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나에게 애원하고 있어. 난 저 남자를 거부할수 없어 그건 너도 알잖아? 인어의 대답을 기다린 채로 도플라밍고는 그녀의 뒤에 서있었다.

재촉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기다려준 인어에 대한 보답이었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었다.

인어가 고개를 들었다.

 

날 아내로 맞이해줘요.

평생 당신이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줘요.

검은 턱시도를 입고 다시 여기로, 날 맞이하러 와줘요.

그간 있었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한바탕 꾼 즐겁고 슬펐던 봄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새로 시작해요. 날 데리러 와주세요.

 

-

오년이 지나고 폭풍 같은 루키들이 그의 성을 쓸고 지나가고 상처와 죄만이 남은 도플라밍고는 예상 외로 순순히 끌려갔다. 하지만 분명한건 드레스로자는 아름다운 국가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기 위한 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의 나라였다.

 

그가 새장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던 그 무렵.

인어는 바다로 떠났다. 잠깐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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