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ronoa Zoro
X
Yulling
<롤로노아 조로 X 율링>
-율링-
네가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나는 널 사랑했다.
당신이 너무나도 눈부셨기에. 그 손짓마저 완벽했기에.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
문이 열렸다. 물이 쓸리는 소리가 들리고 물거품이 일어났다. 딱딱한 소리가 나는 쪽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문을 닫고 걸어온다. 그 사람이 오는 모습을 따라 손을 뻗어보지만 차가운 유리가 손끝에 닿는다. 유리 너머의 소파에 남자가 털썩 앉고는 앞에 놓인 술병을 그대로 들어 마신다. 물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면서. 연거푸 들이키다가 비어버린 술병을 옆에 던져버리고 마치 거울처럼 손을 맞춘다. 대비되는 손 크기를 그가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물속의 그녀.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그에 대한 감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불이 꺼지고 오직 수조의 푸른빛만 가득찬 방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여주기 적합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곡선과 매끄러운 비늘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지는 빛깔. 어느 곳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인어.
*
보름달이 유독 큰 날이었다. 넓은 바다를 다 감싸고도 남을 빛은 한 여인을 강하게 비추었다. 바다 위에서,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든 듯 각양각색으로 솟아오른 바위들. 그 곳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그림자,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이질적인 모양. 허리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선 때문일까. 그들의 아래에는 두 다리가 아닌 하나의 꼬리가 있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 누군가 그녀를 봤다면 넋 놓고 바라볼만한 광경이다. 물 흐르듯 빛나는 머리카락과 달빛을 받아 더 하얀 피부. 달과 바다가 담긴 눈동자는 꼭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 인어는 때때로 바다 위로 올라와 바위 위에 걸터앉고는 노래를 불렀다. 바다 속에서는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입을 벌려도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텔레파시로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고 노래를 부르거나 조곤조곤 혼잣말을 했다. 아무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 었다.
사박사박. 모래사장을 밟는 소리는 언제나 거슬린다. 별로 의미가 있어서 온 건 아니지만 어쩐지 오늘은 바다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계획대로 행동하는 건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이 넓은 섬에 그 외에는 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넓은 백사장에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흔적만 바닥에 남겨졌다. 발자국이 꽤 기다란 선을 만들었을 즈음 슬슬 지루해져 몸을 돌렸다. 수평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어딘가 어색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달을 등지고 있어 보이는 거라고는 검은 그림자 밖에 없지만 바위 위로 튀어 나온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저런 곳에 올라갈 만한 사람이 있는 건가. 애초에 이곳에 자신 말고 누가 있는 건가. 하는 호기심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노려보니 흔들리는 하반신. 다리라고 할 수 없는 곡선, 그 끝에 달린 지느러미까지. 그는 곧 그것이 인어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어...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짧게 생각하며 그가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얕은 물가에 모여 있는 곳이라 쉽게 그 근처로 갈수 있었다. 들쑥날쑥한 바위들을 가볍게 넘으며 어느새 그녀가 있는 바위의 근처로 갔다. 바로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갔을 때 그의 발에 채인 작은 돌조각이 부딪치면서 떨어졌다. 딱 하는 높은 소리를 내며 바다에 빠졌다. 그리고 그 소리에 노래하던 목소리를 멈추고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는 그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겁에 질려 커진 눈동자에 호기심이 잠시 담겼다가 사라졌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이 벌어졌지만 그 작은 입에서는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괜히 놀라게 한 것 같아 머쓱해진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아,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아. 나도 여기 온지 얼마 안 됐다.”
작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변명하듯 짧게 말한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그녀가 불안한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가 잠시 가만히 있다 말을 건다.
“인어인가.”
“아...네...”
“상상 속의 존재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었군.”
“인간에게 쉽게 모습을 보여선 안 되니까...”
많이 죽기도 하고...
중얼거리듯 말한 뒷말을 듣고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알고 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그가 생각했다.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느끼고 그녀가 급히 얼굴을 붉힌다.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달아오른 얼굴. 그의 표정이 움찔한다. 결국 그녀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가 손을 뻗지만 이미 사라져 물 밑으로 희미한 인영만 보인다. 차가운 바람만 잡힌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그가 머리를 헤집고 미간을 구긴다.
*
그 후로 며칠간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날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나가 봤지만 달이 비추는 주변만 파랗게 보일 뿐 온통 검은 바다였다. 그녀가 있던 바위에 가만히 올라가 있다가 내려오기를 며칠. 그날도 그는 바위 위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한 송이의 붉은 장미꽃이 놓여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는 매일 새 꽃을 떨어뜨렸다. 그가 두고 간 꽃은 다음 날 사라져 있었고 그는 다시 새로운 꽃을 놓았다. 단 한 번도 그 꽃은 시든 적이 없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있었다. 딱딱한 가시가 그의 손에 파고 들었지만 굳은살로 가득한 손은 그다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무심코 그곳을 봤다. 누군가 있었다. 새로운 그림자가 생겼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걸음이 빨라졌다. 그곳에 있을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다. 그가 바위 위로 올라갔다. 달을 보며 노래하는 한 여인. 장밋빛 머릿결을 가진 그 여인. 노래를 멈추고 뒤돌아본다. 그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그가 천천히 그녀의 손에 장미꽃을 건넨다.
*
“옛날부터 인어는 멸종 위기였는걸. 팔려나가고 사냥당하고 실험당하고...얼마 전에도 무리 중 하나가 실종 됐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보네.”
“맞긴 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독차지 하고 싶어서 비밀리에 연구하기도 하는 걸. 난 조로가 인어를 알고 있는 게 더 신기했어.”
그는 아아. 짧게 한마디 할 뿐 그에 대해는 더 말하지 않았다.
“요즘에도 사냥은 계속 되고 있어. 바다 속에 작살 같은 게 들어오면 그 때부터 숨어야해.”
“흉터같은 게 생기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나.”
“존재만으로 충분히 비싸니까.”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다. 둘 다 달이 내려앉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로는 나 안 팔 거지?”
“당연한 소리를”
“푸흐, 그럼 됐어.”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
그렇게 서로 사랑한지 몇 달이 지났을까.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그는 바다로 나왔고 그녀는 그를 기다렸다. 그가 모든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각. 그 때부터 그녀는 물 위로 올라왔다. 만나자마자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둘 다 이 관계 이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바위가 가까워질 때 쯤 늘 보이는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건가. 바위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근처에 큰 배가 한척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낮잠이나 자면서 기다릴까 하며 그가 눈을 감는다. 잠을 자기에는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 결국 그가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뜬다. 아까 본 커다란 배에서 나는 듯한 소리. 그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을 때 배 위로 끌려 올라가는 인어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비명 소리와 선원들의 웃음소리. 그런 것들을 두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녀. 그가 바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인어의 어깨에 파고드는 작살. 붉은 피가 주변을 물들었다. 그가 두리번거리다가 앞서 도망가는 그녀를 발견한다. 곧바로 그녀를 잡아 손짓한다. 공포에 가득하던 눈은 그를 보자마자 안심했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뒤에 날아오는 작살. 그가 빠르게 검으로 가른다. 마음 같아서는 저 배를 잘라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의심받을 것이 뻔한 상황. 일단 그녀만 지키기로 했다. 배에서 멀리 떨어진 벼랑 사이에 숨어 있다가 어느새 깜깜해진 밤이 되자 사라지는 배. 그의 품에서 바들바들 떨던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 역시 직접적으로 무리가 공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그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어깨를 꽉 잡는다.
“가자.”
그의 말에 움찔하고는 올려다보는 그녀. 그가 손에 더 힘을 준다.
“우리 집에서. 내 옆에 있어라. 절대 어디 가지 말고.”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그의 옷자락을 잡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
거울처럼 맞댄 유리 수조 사이로 그녀가 더 예쁘게 웃었다. 그도 피식 웃고는 수조의 위로 올라갔다. 물 밖에서 자신을 보는 그를 보며 그녀가 양 팔을 뻗었다. 그가 물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의 목에 팔을 걸고 서로를 바라본다. 하늘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감싸며 그대로 뒷목에 손을 올린다. 잠시 이마를 맞대다가 서로의 볼을 스치며 키스한다.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안으며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