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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海 奏汰

X

樹 ビビ

<신카이 카나타 X 이츠키 비비>

​-은비-

바다가 크게 일렁였다. 봄이 오는 소리가 바다까지 들리는 듯 물풀들이 넘실거렸다. 카나타는 눈을 한 번 깜박였다. 바다 아래에 이곳에서도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데, 뭍은 어떤 모습으로 색칠되고 있을까. 하늘거리는 지느러미를 원망 담아 쏘아보다가도 그만두는 게 일쑤였다.

처음엔 일곱 살이었다. 일곱 살이 되면 밖으로 나가도 돼. 그 다음엔 열 살이었다. 열 살은 되어야 네가 뭍을 봐도 충격받지 않을 텐데? 그건 걱정이었을까, 속단이었을까. 걱정이었겠지. 제가 영영 뭍에서 살겠다고 선언해버릴까 봐. 그게 처음부터 두려웠던 거겠지.

“이젠 곧 「열아홉」이네요.”

열아홉, 열 손가락을 접고서도 또 열 손가락까지 고작 한 손가락 남은 지금이었다. 아마 지금 가보지 않는다면 저 역시 평생 뭍에 나가지 않겠지. 카나타는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바다가 싫은 게 아니었다.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 속 친구들 역시 모두 사랑하고 있다.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테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바깥의 풍경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렇게 운을 뗄 때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큰 맘 먹은 표정을 하곤 입을 떼었다. 그럼 비비를 찾아가면 되잖아! 비비, 아, 비비. 비비, 두 번 닿는 입술에서마저 사랑에 빠지는 마법이 흐르는 것 같은 그 바다의 마녀. 모두가 두려워하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깊은 해저의 마녀.

“그렇지만, 「비비」라면 이미 「거절」당했는걸요.”

비비는 오히려 누구보다 화냈어요. 그런 의미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면서 가지고 있던 조개 껍데기마저 제게 던졌다고요. 그렇게 혼난 적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신이 가요. 비비는 나를 뭍으로 보내줄 수 있을 거예요. 팔자 눈썹으로 난감함을 비추던 카나타의 낯빛이 바뀌었다. 어느덧 다가올 열아홉과 비비. 분명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터였다.

“바다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어. 그건 너도 잘 알잖아?”

해파리의 목소리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겠지. 바다보다 저와 어울리는 곳도 없고. 카나타의 물빛 머리칼이 한 번 넘실거렸다.

바닷속엔 무엇이든 있었다. 무엇이든 떠내려왔고 바다는 그 무엇도 내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궁금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카나타였으니까.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름답잖아요?”

카나타는 한 번 방긋 웃었다. 사르르 접히는 그 눈이 꼭 달콤해서 바다가 내내 단 기운에 잠식당한 것만 같았다. 그거 아니, 카나타. 신카이 카나타(深海 奏汰). 너만큼이나 바다는 너를 사랑해. 너는 바다의 아이, 물의 아이니까.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거니? 또 그 지겨운 바깥세상 타령하려고?”

“「비비」는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요?”

“뭐,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해저의 마녀, 비비의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마녀사냥을 피해 숨어왔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로,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아름다운 마녀. 비비는 가슴 아래로 내려오는 풍성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진한 보랏빛 머리칼이 물결과 더해져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해줄 건 없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어요.”

“네게 받고 싶은 게 없다는데? 끈질기게 굴지 마. 그리고 그때 말하지 않았니? 그런 의도로 내게 오는 거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비비」는 보았죠? 바깥 「세상」을. 거기서 살아보기도 했죠? 「그러니까」, 막는 거죠?”

비비는 인상을 찡그렸다. 무엇도 필요 없었다. 카나타를 뭍으로 보내주면 저는 평생 카나타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금은보화가 있어도 그건 사양이었다. 그 무엇도 필요 없다. 카나타가 없는 바다도, 카나타를 볼 수 없는 자신도.

“난 아름다운 걸 사랑하고, 네가 있어서 이곳은 아름다워. 만약 다른 사람이 너를 도와서 널 바깥으로 보낸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 저주할 거야. 알았어? 나는 네게 해 줄 게 없어. 그러니까, 해파리 친구들이랑 평소처럼 담소나 나눠.”

카나타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했다. 비비가 저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비비는 해저의 마녀라는 이름처럼 심해에서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부글거리며 낯선 마법을 공부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비비는 누군가의 방문도 꺼렸고 심해에서 나가는 건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도 제 방문에는 항상 문을 열어주었다. 퉁명스럽고 까칠하게 굴긴 해도 끝내는 저 보고 아름답다고 고백해왔다.

“비비, 「바깥세상」은 어땠어요? 비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카나타의 둥근 머리카락이 추욱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비비는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나타의 어깨를 잡았다. 뼈가 도드라진 비비의 손길은 제법 차가웠다. 카나타는 가만히 비비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내가 본 세상은, 내내 지옥이었어. 울음소리, 굶주림, 역병, 횡포, 처형. 이 중에 많이 들어본 단어가 몇 개야? 울음소리, 정도겠지. 바다 속에선 없는 일이니까. 사람들은 그걸 이겨낼 수 없었어. 그래서 화살을 돌린 거야.”

비비는 카나타의 손을 가지고 제 윗가슴에 대었다. 서늘한 감촉에 카나타는 한 번 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비와 눈을 마주친 카나타는 비참함에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런 곳이야. 거긴.”

“그렇기만 한 곳이에요? 비비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나요?”

“글쎄. 없었겠지.”

“저는 「비비」를 사랑해요. 비비를 「사랑」하고, 바다도 사랑해요. 그리고 바깥세상도 사랑해요. 제가 「나가서」, 비비를 사랑할게요.”

비비는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깥세상이라니. 자신처럼 마녀도 아니고, 인어인 이 아이가 바깥세상이라니. 역시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답답하고 끝에 내몰렸다 한들 그곳과 세상은 천지가 달랐다. 다리가 생기면 너는 다신 여기로 돌아올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나를 사랑하겠다는 거니. 너는 내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몸이 될 텐데.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돼. 카나타.”

“네?”

“그런 마음으로 세상으로 가려는 거라면, 역시 그만둬. 나를 사랑하는 것 따윈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만 될 테니까.”

비비는 결심이라도 한 얼굴로 카나타의 머리칼을 헤집어보았다. 다시금 웃음을 머금은 카나타는 얼굴에서 사랑이 뚝뚝 흐르고 있는 아이였다. 물결에게도 사랑 받는 바다 아이.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너를 사랑하는 나와 나를 사랑해주는 너. 그래, 나는 네 편이고,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보고 싶은 세상을 보여주어야지. 응당 그래야지.

“원래라면 네게 목소리를 받아야 하는데. 네 목소리는 나 말고 너에게 더 잘 어울리니까 빼앗지 않을게. 그곳에서 네가 보고 싶었던 것도, 사랑도 마음껏 하렴.”

“나를 잊어. 바다도 잊어. 그편이 좋을 거야.”

너는 이제 나를 잊겠지만 내가 너를 간직하고 있을게.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순간에 담아 보내야 하는 내 마음은 흩어지게 그냥 두렴.

 

 

* * *

 

 

“카나타 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 「카오루」.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을 수도…♬”

“늘 그렇다니까. 수족관 보고 있을 때면 늘 그래.”

“그런가요? 후후, 「재밌」으니까요.”

사실은 더 이상 둘러댈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유는 카나타도 몰랐다. 바다, 물, 바다 친구들. 뭐가 그렇게 좋은지도 모르겠고, 어째서 그렇게 들여다보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그리운 마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영영 부유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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