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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beuriel
X

Ideriha

< 레이브리엘 X 이데리하 >

-레이브리엘-

물고기들은 뭘 먹고 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종일 장터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사실 구체적으로 저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오늘 몫의 푸석푸석한 사과와 바닥에 꺼뭇한 곰팡이가 살짝 슨 빵과 한물 가기 직전의 우유를 얻었어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호수 바깥으로 빠끔히 어깨까지 내밀고 꼬리 지느러미를 유유히 움직이는 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인어잖아. 반인반어잖아. 사람도 물고기도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져가는 쪽이 역시 정답일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사냥꾼의 딸인 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건 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져가봤자 그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면 가져가는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그리 고민을 해봤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생선가게 이브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제대로 된 답은 나오지 않을지도. 그 사람들은 생선을 잡아다가 적당히 팔아치우는 쪽이 일일 테니까. 아니, 그보다 이렇게 생각을 줄곧 하고 있으면 정말로 그를 생선 취급 하는 것 같아 퍽 미안해지는 것이다. 실로 내 아버지 같은 사람은 으레 그의 부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고 사냥하는 게 일이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일요일 딱 하루를 빼면 대소서에서 뼈빠지게 일할 뿐인 하류층 계집애일 뿐이지. 나는 바구니 안의 사과를 들여다보다가 그걸 어루만져보았다. 그리고 잠깐 그것을 빼내어 흔들어보았다. 나도 배가 엄청, 엄청 고프지만, 그가 입에 댈 수 있을 만한 가장 무난한 것이라곤 이것밖에 달리 떠오르지 않는걸. 행여라도 그가 그것을 베어물었는데 잘린 벌레를 발견한다면……, 아,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겠다. ……뭐 이렇게 흔들고 있어봐야 벌레가 알아서 나 예 있어요, 하고 기어 나올 리도 없고. 알 턱이 없나. 빠르게 포기하고 나는 어른들 몰래 담배에 불을 놓는 것 같은 마음으로 샛길을 찾았다.

두 시간 가량을 쉬지 말고 꾸준하게 산을 올라야 했다. 대소서 일로 몸이 고단한 평일에는 그를 만나러 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잖아도 해진 구두의 끈이 이 몇 번의 밀회 덕에 끈까지 다 떨어져 무척 볼품없어졌다. 어디까지나 나에 비해 겨 묻은 수준으로만 잘 살 뿐인 여자애들은 그런 내 구두를 보며 속이 빤히 보이는 웃음을 짓곤 했지. 그래도 산을 오르지 않는 레이브리엘은, 이제는 상상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 까닭에 나는 하잘것없고 코웃음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일 먹거리를 챙긴 바구니를 안고 산을 오를 때마다 불안해지곤 한다. 혹시라도 호수에 아무도 없을까봐. 그의 이름을 수면에 대고 가만가만 불러도 아무것도 심연에서 부상하지 않을까봐. 그래서 오늘은 그런 걱정이 기우가 된 일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뭍에 완전히 올라 다리 지느러미 부분만 호수 속에 담근 채 물을 찰박거리고 있었다.

“어라.”

“왔냐.”

“제가 올 줄을 알고 있었어요?”

“이짝으루 올 때, 작은 개울 지나쳤잖어.”

“……그런 걸로까지 알 수 있는 건가요?”

“이 산기슭에 있는 모든 물들은 내 영역이여. 그니께, 내헌티 해코지하러 오는 놈들은, 부러 물이 들지 않는 북북서쪽 길로 쥐새끼처럼 오르곤 허지.”

“하지만 그 곳은…….”

“맞어. 리즈가 여시 놈들 풀어놔가지구. 내헌티 알려주러 와. 부러 그럴 필요두 없는디, 니나 저놈 자슥이나 사서 고생하는 게 좋은가보구먼.”

“왜 거기다가 절 끼워넣는 건데요?”

“그렇잖냐. 이맨치나 구두가 해졌으믄, 무리할 필요두 없을틴디…….”

그리 말을 궁시렁궁시렁 흘리며 이데리하가 별안간 아래로 손을 뻗어 구두를 만지작거렸다. 헌 구두였지만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나 희미한 물기가 묻어, 지금만큼은 새 것 같았다. 그래봤자 남의 구두일텐데 제 신발이 상한 것처럼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이 어여뻐서-남자고 자시고, 어여쁜 건 어여쁜 거다-가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데리하가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한 건지 내가 팔에 건 바구니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사과를 좋아하는 걸까 싶어 조심스레 그것을 꺼내 내밀었지만, 그는 사과와 내 얼굴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번갈아보더니 푸른 물에 질린 듯한 손가락 끝으로 바구니를 가만가만 건드렸다. 그의 귀를 덮은 지느러미가 토끼처럼 쫑긋거리는 것 같아 보이는데. 착각일는지.

“이거.”

“이거요? 빵?”

“아니, 그거 말구. 바구니 말여, 바구니.”

“어, 이거. ……이게 왜요?”

“잠깐만 빌려줘 봐.”

아무래도 착각은 아닌 모양이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우유와 빵을 빼고 그에게 바구니를 건네다주니 덥석 그것을 받아들고 호수 속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가 상체를 물 속으로 집어넣을 때 수면 위를 물보라가 엉망으로 일그러뜨리고, 덕분에 치맛자락이 젖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치맛단 위에 사과와 빵과 우유를 어설프게 얹어놓고 그가 하는 양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구니가 젖지 않게 조심조심 헤엄치며 호수 저편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무얼 하고 싶어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깊은 숲에도 봄이란 건 찾아오는지라, 하늘의 거울처럼 너른 호수 저 건너편에 벚꽃이 분홍색 뭉게구름처럼 피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다 져버린 풍경이었다만 나무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이데리하에게는 이 철이 가장 좋았다. 이데리하의 뒷모습이 하얀 점을 찍은 것처럼 조그마하게 보인다. 이리 찰박 저리 찰박 꼬리 지느러미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수면 위나 나무 아래를 굴러다니는 것들을 열심히 집어 담는다. 그 모양이 마치 예쁜 유리구슬이나 사금을 발견한 어린아이들의 반응과 별 다를 바가 없어 사과만 만지작거리며 킥킥 웃었다. 멀리서부터 헤엄쳐온 그가 내 웃는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려. 재미난 거라두 있어?”

“아뇨, 그냥, 이데리하가 귀여워서.”

“안 귀엽다.”

이렇게 내뱉으면 정해진 수순처럼 칼같이 말하며 얼굴을 벚꽃잎처럼 붉힌다. 그것마저도 귀엽다고 대꾸하는 대신에, 나는 고개를 빼고 그가 내민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알이 굵거나 물을 먹어 조금 쪼글거리는 버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 만 하다 싶었다는 맘에 이냥저냥 고개를 주억대고 있는데 이데리하의 손이 그 중 하나를 집어 내게로 내밀어왔다.

“네?”

“뭐가 네, 여. 먹어봐.”

맛있으니까. 그리 덧붙이면서도 내가 행여 싫어할까봐 입술 가까이에 대주지는 못하고 다가오는 그 열매가 몹시 더디게만 느껴졌다. 그는 조금 대범하게 행동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그의 손목을 덥석 집어 그 팔을 끌고 버찌를 무는 쪽으로 표출이 되어버렸다는 게 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으나. 혀에 퍼지는 맛은, 뭐 물에 한 번 빠지거나 바닥에 방치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난 과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쪽이 더욱 마음에 든다. 그가 건져낼 수 있고, 나에게 투명한 비늘 덮인 손으로 먹여줄 수 있었던 간식이라는 점에서. 단 한 알만 집어먹었을 뿐인데도 묘한 포만감이 느껴지는 건 그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 저 남아있는 알들에 빼곡이 걸린 것이려니.

조금만 더 먹어보고픈 욕심에 쥐고 있던 사과를 다시 내밀었다.

“먹을래요?”

“……늘 생각허지만, 제대로 밥 먹구 다니기는 혀?”

“오늘은! 잘 먹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부러 앞의 단어에 과장되게 힘을 싣고 이야기를 하면 남의 진짜 속도 모르고 아침 호수 곁을 누비는 안개처럼 야트막하게 인어가 웃는다. 예뻤다.

치맛단에 올려두었던 우유의 뚜껑을 따 혹여 오는 사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냄새를 살짝 맡아보았다.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병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우유병을 양 손으로 들어 안을 들여다보다, 입을 대고 가볍게 홀작였다. 수면 바깥으로 삐져나온 그의 꼬리 지느러미가 기분 좋게 꼼질꼼질 움직인다. 우유가 빙고였던 걸까? 발치를 구르는 열매들과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음식들만 가득한 볼품없는 피크닉이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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