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gnus

X

Rune

<매그너스 X 르네>

-르네님-

“......이게 뭐냐, 대체?”

“인어라던데요. 그, 뭐냐. 저기 속국에서 매그너스 님이 희귀품 좋아한다니까 보내신 거라고...”

“......내가 뇌물 좋아하는 건 맞는데.”

“네, 좋아하시죠...”

“생물 좋아한다고는 안 했거든?!?!”

 

어느 평화로운 낮, 수도 헬리시움의 성채 안쪽에서 때 아닌 고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아, 좀, 매그너스 님! 한 번 보기라도 하세요!”

“됐다고! 돌려보내!”

 

저 성격 더러운 새끼. 벨데로스는 서러운 호박색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매그너스를 뒤쫓았다.

 

“보지도 않고 보내시면 제가 뭐가 돼요! 진귀한 종이랬단 말이에요!”

“아, 그럼 네가 보던가! 내가 괭이새끼도 아니고 생선 비린내를 사서 맡아야겠냐?!”

“저번에 청새치 들어왔을 때는 좋아하셨으면서!!”

“그럼 저것도 회 뜨던가!”

“미쳤어요!?”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매그너스 님이 확인하셔야죠! 네가 확인하고 그냥 보내! 안 돼요, 저거 처음 본 사람 말만 따른댔단 말이에요! 무슨 닭이냐?! 물고기 대가리나 새대가리나 거기서 거기죠! 어쩌라고 이 용대가리야! 직속 부하 그렇게 막 불러도 돼요?! 왕이 까라면 까야지 잔소리야! 벨데로스는 불경처럼 서러운 표정으로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는 검은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진짜 한 대 치고 싶다, 부러 보폭을 크게 하고 빠르게 걷는 것이 누가 봐도 듣기 싫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매그너스는 키도 덩치도, 그 이명만큼이나 난폭하고 압도적인 남자였다. 그러니까 보폭을 조금만 크게 하고 걸어도 웬만한 노바들은 죄다 좀 뛰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벨데로스는 속으로 피눈물과 사리를 함께 삼키며 참을 인 자를 그렸다.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다,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다... 심심하면 날아가서 숨어 버리곤 했던 본인의 천방지축 소년기를 떠올린 벨데로스는 그나마 좀 침착해졌다. 그렇잖아도 퍽이나 말을 잘 듣는 노바인데 종족 중에서 가장 우월한 크기를 자랑하는 저 튼튼한 날개로 탈주를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지 골이 다 아플 지경이다. 그 정도로 철이 없는 용은 아니기에 망정이지. 물론 성격이 좀 더럽기는 하지만.

 

 

“거 알끈 못 벗은 새끼용도 아니고 진짜...”

“뭐 인마?”

 

...취소, 많이 더럽다. 불타는 산 같은 시선이 휙 떨어지자 벨데로스는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렇잖아도 사나운 눈매인데 기분 나쁜 표정을 하면 정말 더러운 인상이 된다, 잘 생긴 얼굴이긴 한데 솔직히 벨데로스는 아직 그와 삼 초 이상 눈을 마주칠 깡이 없었다. 언젯적인가 뿔 하나 동강나고 눈 위로 크게 베인 뒤에는 더 그랬고, 지금처럼 저기압일 때는 훨씬 더 그랬다. 심약한 노바랑 밤에 눈 마주치면 목숨 하나 저승으로 보내고 말 것이다, 오금이 저려서 진짜.

 

“아, 진짜 좀 봐 주세요... 다음부터는 저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해 뒀으니까 한 번만요, 예?”

“젠장...”

 

물론 그 카리스마가 통치에는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매그너스는 그렇게 어리석지도 책임감이 없지도, 철이 없지도 않은 남자였다. 그가 걸어 나가면 공기가 얼어붙었고 테라스에 서면 태양이 되었다, 폭군이라는 이명이 붙은 압도적인 권력자, 자비 없고 난폭한 남자. 그러나 그 공포스러운 군림에 누구도 반항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꽤 일을 잘 하기 때문이었다.

 

싫어 죽겠다고 땡깡을 피워도 속국에서 온 값비싸고 희귀한 조공품을, 심지어 귀한 종이라고 몇 번을 강조한(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귀하지 않은 종이면 깡그리 죽을 텐데 그런 손해 보는 구라를 칠 리가 없었다) 인어를, 고작 생물 키우기 싫다고 돌려보내는 것은 제멋대로여도 너무 제멋대로인 짓이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차피 돌려보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저렇게 대놓고 죽상을 하는 것이다, 매그너스는 해야 할 때와 아닐 때는 구분하는 남자였다.

 

“한 마리 정도면 괜찮잖아요, 요즘 대세고...”

“제에엔장...”

 

인어를 기르는 것은,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밈 같은 것이었다.

관리가 약간 까다롭고 구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서ㅡ그러니까, 일반인은 마음대로 기를 수 없는 권력자의 전유물이라는 상징성이 붙어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는 재력 자체와도 같은 생물. 외양이 아름답고 희귀한, 살아 있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 어느 나라의 왕 중에는 인어를 몇 백 마리나 종류별로 모아 놓은 수족관을 만들어 제 권력을 과시했다던 이도 있으니까. 반란 일어나서 죽었지만.

그러니까 거절했다가는 빼도 박도 못하게 유행도 모르는 놈이 된다. 지는 것은 싫어하고 과시하는 것은 좋아하는 매그너스에게, 겨우 생물을 기르기 귀찮다는 이유 정도는 살짝 접어두어도 괜찮은 작은 짜증이었지만... 그가 정말로 싫어 죽고 있는 이유는, 하필이면 매그너스가 죽도록 싫어하는 아스완의 왕이 아름다운 까만 인어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딱 삼 일 전, 안부라는 핑계의 내인어자랑대잔치 염장편지로 느이 집에는 이거 없지를 시전당한 매그너스는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인어를 하나 들여 놓으려던 계획을 싸그리 치우고 그딴 비린내 나는 생선은 필요 없다며 역정을 냈다. 그리고 집어 치운 것이 무색하게 공물로 인어가 오고야 만 것이다. 나 따라했냐며 편지로 잔뜩 비웃음당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온 위장이 박박 긁히는 기분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그러나 정말로... 별 수가 없었다. 돌려보내기에는 재운송 과정에서 죽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생물이었고, 사실 매그너스는 좀 아까웠다. 함께 온 안내서가 삼십 센티가 넘는 것을 보아 일단 기르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인어임은 틀림없었고, 보통 기르기 까다로운 인어는 희귀한 종이었으며, 무엇보다 사실 인어라는 것 자체가 구하기가 조금 어렵기도 했다. 인어 정도면 크게 골치 아픈 사치품도 아니었고.

 

결국 그는 위장을 포기했다.

 

“...후우... ...잘 받았다고 전해.”

 

벨데로스는 흐뭇하게 제 눈가를 꾹꾹 문지르는 매그너스를 바라보았다. 입매에 못마땅한 기색이 잔류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그에게 투덜대지는 않았다, 수첩을 내밀자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썩 진지하다. 아무튼 일은 잘 하는 용이야. 그래, 성격이 조금 더럽기는 해도 이 노바를 동경해서 온 거지.

 

“그럼 매그너스 님 방에 보내놓을게요.”

“아니 뭐?”

“이 인어가 사람 손 되게 많이 타는 섬세한 종이라 주인이 관리해야 한대요.”

“뭐 임마?”

“안내서랑 취급 주의서랑... 인어 관련 서적 같은 건 공물로 오면 보내드릴게요! 그럼 힘!”

“야, 이 새끼야!”

 

 

......그렇게 해서, 매그너스는 까만 천에 덮여 있는 정체불명의 수조를 방에 두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정확히는 정체불명은 아니지,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다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모를 뿐이었다.

일국의 왕에게 못생긴 인어를 줄 사람이 있겠냐마는(그리고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성격 더러운 매그너스는 그 나라를 엎어버리고 말 것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종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인어와 졸지에 동고동락하게 된 매그너스는 수조 안이 매우 두려웠다. 성별이라도 물어볼걸.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며 의자에 털퍽 주저앉았다.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안내서는 솔직히 보고 싶지도 않았다, 십 분만 있다가 보자, 조금만 더 있다가... 십 분이 한 시간 되고 한 시간이 하루 되고 하루가 일주일 되는 와중에 수조 속의 인어가 굶어죽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매그너스의 알 바가 아니었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인어를 받겠다고 하자마자 매그너스는 이마트에서 살아 벨데로스는 집에 갈 거야 하고 아주 즐거운 낯으로 쌩 돌아가 버린 부하가 몇 번이고 강조한 진귀하고 섬세한 종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걸렸다. 매우 깊이.

 

“젠장할......”

 

......그러나 안내서를 보기에는 그 종이로 된 탑의 높이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저거 읽고 일은 언제 하라고... 핵심만 정리해 줄 것이지 아주 종의 연구기록을 죄다 적어놓은 것임이 분명했다. 겨우 인어 관리법이 백과사전 열 몇 권을 넘는 높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딱 혀 깨물고 죽거나 자신에게 인어를 보내자는 안건을 낸 모자란 놈을 죽이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다, 대체 왜 인어 주제에 처음 본 사람만 따른다느니 한단 말인가. 죄다 난생인 노바족도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단 말이다. 애초에 아무리 잘 관리했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일 수가 있는 건가? 알 같은 걸 보냈나? 연어알 같은 거라도 들어 있는 거냐? 보낸 놈도 대가리가 있으니 주인이 키워야 하며 처음 본 사람 말만 듣는다는 인어를 초보자인 자신이 부화시켜야 할 상황에 처하게 만들지는 않... 을 것이라고 위안하기에는, 그렇다, 안내서가 너무.. 길었다.

 

“......”

 

설마 탄생부터 교육까지 다 저기 적혀 있는 건가? 어머니 그란디스시여. 매그너스는 생전 찾지도 않던 신을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설마... 알이 들어 있을 리는 없지, 진짜로. 저 멀리서 설마가 용 잡는다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했지만 그는 그냥 수조 안에 든 인어가 매우 새대가리일 뿐이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슬쩍 바라본 수조는 아주 얌전했다.

......정말 알이 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얌전했다.

매그너스는 착잡한 심정으로 까만 천이 덮인 수조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꽤 두텁게 덮인 천 너머로 어릇한 냉기가 느껴진다.

 

“......”

 

매그너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천을 들어올렸다. ...가 놓았다. 아니... 천하의 매그너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맥없는 남자였지. 스스로도 작은 허망함을 느끼면서도 긴장이 가시지 않는 것은 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 베어 죽일 때보다 더 떨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노바는 몇 명 좀 죽어도 돼. 세상의 주인은 나다.

 

......아무튼 간에, 매그너스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을 덥썩 집었다. 그래, 할 때는 해야지. 그 새대가리 인어의 낯짝을... 좀 봐야겠다.

 

“?”

 

매그너스는 놀라 나자빠지려다 수조 벽에 기대어 겨우 균형을 잡았다. 졸지에 땅에 부딪혀 뒤로 꺾인 꼬리가 매우 아파왔다. 젠장, 노바는 꼬리인데. 욱신욱신한 꼬리를 몇 번 흔들며 끙끙대던 그는 자신을 계속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눈동자에 어깨를 조금 굳혔다.

 

“......”

 

동그란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향한다. 그도 따라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까만 천이 얌전히 쥐어져 있다. 어쩐지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 된 매그너스는 잽싸게 천을 놓고 빈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내가 덮은 거 아니거든. 난 이 시대의 피해자... 가 아니라.

 

“......알은 아니네.”

“?”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 다행이다. 수조 벽에 바짝 붙어 동글동글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까만 눈동자의 인어는 누가 봐도 십 대 후반 남짓한 소녀로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꽤나 길게 늘어져 물결 틈으로 퍼져 있고, 인간의 것을 닮은 허리 아래쪽으로는 투명한 꽃잎 같은 것이 치마처럼 겹겹이 둥근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근데.

 

“헉, 야 팔 움직이지 마.”

“?”

 

고개를 갸웃이는 움직임에 몸 위로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물살 틈으로 흔들렸다. 가슴 앞으로 꼭 모여 붙어 있던 팔이 이미 자리를 벗어나 있던 순간의 일이었다, 매그너스는... 일단 예의상 눈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는 했으나 굳이 그 생각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매우 이성적인 남자였고 굳이... 그러니까.

 

“......벗었.”

 

......매그너스는 조금 심각해졌다. 생각해 보면 인어가 옷을 입을 리도 없다. 치마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하반신은 옷의 일부일 뿐이었고.

졸지에 인어의 성별을 확신하게 된 그는 정말 이성적으로 수조 너머에서 움직이는 인어의 몸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매우 이성적인 상태였다. 참고로 이성의 성은 성품 성이다, 그리고 매그너스는 성품이 그다지 올곧지 않은 사내였고.

매그너스는 약간 너그러워졌다. 적어도 인어가 손의 위치를 다시 흉부 앞으로 옮기거나 물살이 우연찮게 인어의 머리카락을 가슴 앞에 옮겨놓는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좀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의 피를 타고난 노바는 상당히 남성 중심적이고 전쟁과 가까운 종족이었고, 매그너스는 그 마초적인 종족의 왕 되시는 분이었다. 그러니까 눈앞에 벗은 여자 가슴이 있는데 안 볼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저건 물고기라고 생각하기에는 인어의 상반신 디테일이 너무나 훌륭했다.

 

인어는 손을 대면 녹을 듯이 흰 피부를 하고 있었다. 수조 너머에서 보이는 것임에도 연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나긋나긋한 어깨, 가늘고 날씬한 팔과 도드라진 늑골 위...로 올라가면 위험하니 아래로 내려가서 쏙 들어간 허리선과 곡선을 이루는 골반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꽃잎 같은... 지느러미? 하반신이 조금만 더 밑에 달려 있으면 좋겠... 아, 아니. 가슴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던 매그너스는 그제야 보통 물고기 하반신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갸웃한 인어는 동그란 치마 끝을 움츠렸다 펴며 위로 헤엄쳤다. 치마 아래로 늘어진 솔 같은 것이 물살에 하늘하늘하게 늘어졌다. 그러니까, 저건... 그는 순간 매우 불경하게도 해파리냉채를 떠올렸다.

 

해파리다, 해파리. 그 흐늘흐늘하고 물렁물렁한 거. 알고 있던 해파리와는 영 인지부조화가 오게 생겨먹은 해파리 인어.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이 해파리를 닮은 듯도 했다, 갓처럼 말린 동그마한 단발 안쪽에서부터,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던 촉수가 풍성하게 퍼져 나와 있었다. 헤엄칠 때 저것도 움직이나? 희귀한 종이라더니 희귀하게는 생겼다. 그는 해파리 인어는 생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뭐... 예쁘긴 하네.”

 

치마를 입은 듯이 동그마한 하반신이 귀엽기는 했다.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생각도 못 했지만 크기도 그보다 작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을 닮았고(알도 아니고.), 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가 각양각색의 보랏빛이 깃든 하반신과 썩 잘 어울렸다. 얼굴도 꽤 예쁘장하니 그 해파리를 꼭 닮은 머리카락과 함께 독특한 사랑스러움을 뽐냈다. 인어가 아니라 노바였더라면 평민으로 태어나도 귀족 집 마나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외모였다. 가슴도 예뻤, 아니 이건 아니고.

 

저 혼자 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벨데로스 녀석이 들어오면 머쓱하니 천이라도 좀 던져주는 것이 나을지 고민하던 매그너스는 인어가 계속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주 바라보니 시선이 맞았다.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는 제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조 속에 갇혀 그를 바라보면서도 천진하기 짝이 없었다.

한 삼 일 정도만 개봉식을 미뤄두려던 마음을 잠깐 가졌었던 매그너스는 마지막 남은 양심 속에서 은은하게 죄책감을 느끼며 시선을 슬쩍 비꼈다. 아무래도 안내서를 미루기에는 그른 것 같다, 알도 아닌데 밥을 안 줄 수도 없고. 사내놈이면 한 끼 정도 안 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꽤 예쁘장한 계집애라. 그것도 초면인데 졸지에 신체구조를 탐구하고야 만 계집애라. 신체 건장한 유성애자 헤테로 시스젠더 노바족 남성 매그너스(폭군, 용)는 미묘한 부양심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 말이다.

 

아무튼 매그너스가 뜬금없는 가장의 책임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인어는 수조 속에서 퐁그랗게 떠다니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한참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인어에게 다시 시선을 돌릴 때까지도 그랬다. 인어는 마치 할 수 있는 것이 매그너스를 바라보는 것밖에는 없는 양, 동그란 눈으로 그를 말끄라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매그너스는 부담스러워졌다. 쟤 계속... 나 보고 있었나? 문득 그는 이 방에서 자신이 옷도 갈아입고 목욕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처음 보자마자 인어 가슴부터 봤던 사람이라 양심이 있지 보지 말라는 말도 못 하겠다. 말도 못 텄는데 몸부터 트게 생겼네. 그런데 인어가 말은 할 줄 알던가, 매그너스는 노바들과 별로 다른 점도 없는 발긋한 입술을 말끄라미 바라보았다.

 

“...큼. 야, 너 이름은... 있냐?”

“?”

“...그래, 말 못 하는군.”

“...?”

“......아, 해 봐, 아.”

 

수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는지 아닌지. 일단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아 뭐가 안 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매그너스가 아, 아, 하고 입을 벌리며 몇 번 가리키는 것을 본 인어는 그 동그마한 눈을 깜빡이다 제 입가로 주먹을 모아 말아 쥐었다.

 

“......텄네, 텄어.”

 

주인 말만 듣는다더니 그냥 못 알아듣잖아. 그런데 귀여웠다. 귀엽네. 보드랍게 말아 쥔 손으로 제 입가를 가리고 눈을 깜빡이는 인어는 확실히 귀여웠다. 인어가 든 수조는 꽤 낮았고 그는 문득 의자를 밟고 올라서면 물에 손을 넣어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물비린내도 싫고 해파리랑 접촉하는 것도 싫은 매그너스는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다. 귀엽긴 한데 모든 거부감을 뚫고 교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그 인어가 웃기 전까지는 그랬다.

 

 

“......ㅡ......”

“...... ...... ......”

 

손 위로 빼꼼 보이는 두 눈이 가느다랗게 휘어지더니 작게 보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동그란 물거품이 새어나오는 손을 맞잡고 아래쪽으로 쭉 편 인어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길게 몸을 늘였다, 다시 그와 시선이 맞자 이번에는 소리 없이 작게 웃었다. 소녀 같은 발간 뺨이 매그너스의 눈에 길게 박혔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수조를 손끝으로 한 번 톡 두드리고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한 장 넘긴 안내서의 맨 위에 <르네> 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야, 해파리도 물고기냐?”

“어, 걔 해파리였어요?”

“그러데.”

 

매그너스는 집무실 의자에 길게 파묻혀(사실은 날개랑 꼬리 때문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는 것이 한계였다) 밤새 읽었는데도 아직 반이 넘게 남은 안내서를 넘겼다. 역시 아무리 봐도 이건... 연구 기록이다, 연구 기록. 요약정리 하라고 이 자식들아.

 

“해파리 인어는 잘 죽는다던데 어떻게 잡아왔대. 귀한 종이라더니 뻥은 아니었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검수도 안 했냐?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일단 지금 보고 있는 부분에는 잘 죽는다는 기록이 없었다. 끝까지 다 읽으면 나오려나 싶었지만 분양 설명서 비슷한 거에 이 생물은 빨리 죽는다고 써 놓는 일도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것 같고. 매그너스는 안내서를 정독하는 그를 열심히 보다가 창밖이 어두워지자 졸린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꿈뻑꿈뻑 눈을 부비던 인어를 떠올렸다.

수조에 천을 도로 덮어 주려니 싫어하는 것 같아 불을 좀 꺼 줬더니 몇 분도 되지 않아 동동 떠다니기에 죽은 줄 알았는데. 수조를 두드려도 깨지를 않아서 기겁하며 끈질기게 서른 번 정도 노크하자 졸려 죽겠다는 눈으로 처량하게 그를 쳐다보기에 웃겨서 아침에는 안 깨게 조용히 나와 주었다.

피부도 연약해 보이고 영 조그마해서, 확실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ㅡ매그너스는 ‘해파리 인어는 심약하여 큰 소리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수조를 두드리지 않도록 합니다’ 라는 구절을 조용히 펜으로 칠했다ㅡ 그새 정이 붙었는지 죽으면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했다.

 

“실수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안 된다고 하도 성화기에 못 봤죠, 뭐. 책 좀 보세요, 맨날 정치랑 전쟁 쪽만 보시니까 모르지.”

“이게.”

 

집무는 뻘로 보나. 해파리 인어의 생태 같은 게 왕에게 필수인 것도 아니고 그가 알 리가 없었다.

 

“검 휘두를 시간에 책을 읽으셨으면 아셨을 거예요.”

“닥쳐, 검 대신 휘둘러 버린다.”

“인어 밥은 뭐 먹는대요?”

“말 돌리지 마, 이 자식아.”

 

......물고기 같은 거 주래. 동족상잔 아닙니까? 알 바냐. 매그너스는 수면 위에서 먹이를 주면 수조의 물을 갈아 줄 필요가 없다는 부분에서 잠시 고개를 기웃하다 별 생각 없이 종이를 넘겼다.

 

“...사탕 같은 거 주면 탈나나?”

“죽어요, 그러다.”

“음.”

 

왠지 사탕 하나 물려주고 싶게 생긴 얼굴이라. 안내서의 식성 부분을 다시 읽어 봤지만 뭘 주지 말라는 말이 없었다. 속국에 편지를 써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매그너스는 굉장히 팔불출 같아진 기분이 되어 그만두었다. 책 뒤지면 나오겠지 헬리시움의 왕씩이나 되시는 몸이 자필 편지를 써야 하겠는가. 재수 없이 웃는 아스완의 왕이 잠시 떠올라서 기분이 매우 저조해지기도 했고.

 

“오늘은 일찍 간다. 저녁 먹기 전에 갈 거야.”

“예? 왜죠?”

“까라면 까야지 말이 많아. 걔 밥 안 주고 나왔거든. 이따 만만한 거 회 좀 떠서 가져오라고 해.”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매그너스는 한 손에 물고기의 온기가 남아있는 회를 들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평소라면 체면이 있지 음식을 직접 옮기는 짓 따위를 할 리가 없었으나, 그게 좀... 방에 벗은 여자애가 있어서. 그는 안내서에 적혀 있었던 ‘촉수에 엉켜 상하거나 괴사할 수 있으니 천을 주지 말라’ 는 문장을 상기하며 매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하라고... 매그너스(노바족, 건강함)는 좀 매우 곤란한 심정으로 방 증축을 매우 고려하며 고개를 들었고.

 

“......큽.”

 

그리고 수조를 보자마자 아주 유쾌해지고 말았다.

 

“크흡... 뭐야, 뭐 하는데. 왜 그러고 있냐?”

 

거꾸로 뒤집혀서 뱅글뱅글 돌고 있던 인어가 그를 보자 반색하며 몸을 튼다. 그리고 동선이 꼬여 얼굴로 쏟아지는 촉수에 뒤엉켜 바동거렸다. 매그너스는 웃겨 죽을 것 같았다. 코미디 찍냐. 몇 분 정도 바동대며 제 촉수 떼를 겨우 정리해 낸 인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뒤집혀서 그러고 있었냐. 자, 올라와 봐.”

 

매그너스는 낄낄 웃으며 의자를 수조 앞에 붙였다. 의자를 밟고 올라서자 물속에서 의아하게 올려다보는 인어가 보인다, 그는 접시에 든 회를 하나 집어 들고 물 가까이에 갖다 대었다. 이 정도면 손으로 집어서 가져가려나. 어깨까지만 살짝 내밀어도 입으로 물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였다. 인어는 회를 빤히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그 쪽으로 헤엄쳐 고개를 빠끔 물 위로 내밀었다.

...그런데 그 이상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인다. 분명 먹고 싶은 것은 맞는 눈치인데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가 다시 눈만 빠끔 내민다.

 

“...올라올 줄 몰라?”

 

계속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던져줄까 고민하던 매그너스는 수면 위에서 먹이를 주면 수조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을 상기하고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손을 조금 더 뻗자 약간 더 올라온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인어는 또 그 위치에서 더 이상 올라올 기미 없이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뭐가 문제냐. 매그너스는 그냥 포기하고 손에 집었던 회를 낼름 삼켰다. 보는 앞에서 제 먹이를 약탈해 가는 것이 분하지도 않은지 인어는 여전히 동그마하게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눈이 참 예쁘다, 예쁘장한 얼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물 위로 올라오니 젖어 뭉친 속눈썹이 마치 막 운 것처럼 반짝거려서 더없이 가련해 보였다. 천진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까만 눈동자... 그는 문득 빈 손을 뻗었다, 조금 고개를 들어 주면 잡힐 것 같았는데, 인어는 손을 피하듯이 물속으로 쏙 들어가서 저를 바라볼 뿐이었다. 서운할 것도 없었으나 공연히 서운했다.

가만히 바라본다. 물 안에서 인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어의 눈에 제가 어떻게 비칠지 잠시 궁금하려던 매그너스는 퍼뜩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어깨를 굳혔다.

 

저거... 겁먹어서 안 나오는 거 아냐?

 

...보자. 매그너스는 노바족 사내 중에서도 매우 건장하고 체격 좋은 장대한 사나이였다. 당연히 그만큼 날개도 크고 꼬리도 두껍고 뿔도 날카로웠다. 압도적이고 위압적인 기골은 전장에서는 우위를, 단상에서는 발언권을 그에게 쥐어 주는 권력이었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자면 그건 좀 무섭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사실 그는 덩치를 제외하고도 좀 거칠게 생긴 사내였다, 휙 치켜 올라간 눈꼬리나 왼쪽 눈을 크게 가로지르는 흉터나, 햇빛의 열기 냄새가 나는 커피색 피부라든지. 회푸른색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 산처럼 불타오르는 시큼한 라임 색의 시선.

따지자면 꽤 굵직한 선으로 떨어지는 외모일 것이다. 매그너스는 자신의 늠름함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좀 초식동물처럼 생겨먹은 저 인어에게는 아닐 가능성이 꽤.

 

......아니겠지. 매그너스는 한 번 더 손을 뻗어 보았다. 인어는 좀 더 깊이 들어갔다. 맞나 보다.

그는 좀 상처받은 기분으로 인어를 쳐다보다가 잠시 고민했다. 일단 어쨌든 죽을 때까지 반강제적으로 같이 살아야 하는 사이에 내 얼굴 무서워해 봐야 너만 손해일 텐데. 인어는 무서워하는 것 치고는 그를 꽤 잘 쳐다보고 있었지만 눈매가 영 가련해서 그를 헛갈리게 했다.

...매그너스는 매우 어색하게 무해하려고 노력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인어는 그를 바라보다 눈썹을 약간 늘어트렸다, 그가 정말 가식적으로 입매를 바들바들 끌어올리자 인어는 진짜 좀 제대로 겁먹은 표정으로 수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다.

 

미친놈으로 봤겠군. 그는 그냥 인어를 하루 정도 굶기기로 했다. 절대 마음이 상해서는 아니고.

 

 

“저기요, 무서운 얼굴을 가지신 매그너스 님.”

“놀릴 거면 닥쳐라.”

“얼굴이 무서워서 인어한테 거부당한 매그너스 님.”

“닥치라고.”

 

말 해 주지 말걸. 벨데로스는 매그너스가 감봉을 마음먹을 무렵에야 그를 놀려먹는 것을 멈추었다. 진짜 자존심 상하는 용생이다.

 

“여자한테 꽤 인기 많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권력 빨이 아닐까요?”

“너 진짜 감봉이다.”

“잘못했습니다 매그너스 님. 초미남이세요.”

“조용히 해, 아부 안 통해.”

 

막 왔을 때는 꽤 반기는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대체 왜 손을 피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나 서러운 것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매그너스는 깃펜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성채 증축 관련 사안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방에 수족관도 만들어야 하고, 가까운 시일 내로 뭘 공사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또 서러워졌다. 집도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려는데 내 손을 피했다 이거지.

 

“이렇게 된 거 잡힐 때까지 한다.”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안 닥쳐?”

“......잘못했습니다. 근데 진짜 안 하시는 게 좋을걸요.”

 

정확히 삼 분 뒤, 벨데로스는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물수건으로 누르며 서럽게 양도당한 서류를 쳐다보았다. 진짜 장난도 못 치게 하고.

 

 

매그너스는 방문을 쾅 열어젖히고 핏대 선 얼굴로 읽다가 때려치운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이런 젠장, 중요한 건 앞에 넣든가 요약정리를 하든가. 그는 한참을 훑어가며 넘기고서야 접촉에 대한 유의사항 항목을 찾을 수 있었다.

 

‘해파리 인어는 체온이 낮고 피부가 약해 인간의 체온에도 살이 쉽게 익으므로 닿거나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며 수조의 물은 언제나 차가운 상태로 유지시켜야 합니다’

 

“샤브샤브냐.”

 

왜 익는데? 초콜릿도 손 위에서 녹으려면 좀 걸린다. 매그너스는 제 풀에 성질이 나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젠장, 그러니까 얼굴에 겁먹은 거 아니잖아. 자신감을 회복해야 하는지 밥을 못 먹게 해 놓고 성질을 낸 자신의 존엄성을 상실당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 책상에 화풀이를 하다가ㅡ 문득 침착하게 수조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 젠장.”

 

‘해파리 인어는 심약하여 큰 소리에 쉽게 스트레스를ㅡ’ 그는 정말 딱 혀 깨물고 죽고 싶었다. 이번에는 정말 겁 줬다. 젠장, 젠장. 그는 제 머리를 꾹꾹 누르며 수조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인어는 몸을 꼭 말고 구석에서 헤엄치려 노력하고 있었다. 꼭 도망가려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인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수조 안 밖에는 없었다, 인어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어차피 별반 다르지도 않을 수조의 구석뿐이었다.

 

문득 인어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물속인데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인어는 울고 있었다. 그 축 쳐진 눈매를 더 일그러트리고, 물속에서 물을 떨어트리며 겁먹은 얼굴을 하고,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는 눈은 덧없이 처량하고 그런데도 선량하리만치 천진한 빛이었다.

매그너스는 가만히 숨을 멈췄다.

 

“......미안.”

“......”

“미안... 미안.”

 

그는 수조의 유리벽에 손을 문대었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얼굴 위를, 물 너머로 유리 너머로 매만졌다. 기묘하게도 숨이 턱 막혔고 가슴이 답답했다, 무엇인지도 모르게 서럽고 안쓰러웠다. 훌쩍훌쩍 울던 인어가 다가와 그의 손 위에 손을 얹은 순간에 그는 잠시 심장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수조 위에 얹힌 손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수조 안에서 얹힌 손은 절박하리만치 순정적으로 유리벽을 꼬옥 누르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숨을 내뱉으며, 헉, 하고 답답한 숨을 밀어내며, 손을 맞댄 유리벽을 강하게 붙잡았다.

 

처음 본 사람만, 따른다고... 따른다고. 인어와 그 사이에 유리벽이 없었다면, 그 애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을까. 제 처지도 알지 못하는 저 눈으로 저를 따른다고. 따른다고. 대체 왜, 무슨 권리로. 그는 수조 위에 이마를 맞대었다. 도망칠 곳도 없는 수조 안에서 큰 소리에 숨으려 애쓰며 우는 인어는 그 소리가 그가 낸 것임은 알고라도 있을까. 영영 그 수조 안에서 나가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을까. 만약에 그렇더라면 어떻게 그런 눈을 할 수 있을까.

의문조차 없는 착실한 순정이 매그너스를 찔렀다. 그는 그 순간 딱 하나만을 알았다, 그가 그 천진한 추종만큼이나 착실하게,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미안해, 소리 안 지를게. 미안.”

“... ...”

“......르네.”

 

자그맣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인어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늘어진 눈매로, 축 쳐진 눈썹을 하고, 매그너스는 그가 일생에서 한 번도 지어 본 적 없을 정도로 누그러진 표정으로, 수조 너머의 얼굴을 매만졌다. 가만히 수조 벽에 볼을 붙여 오는 인어는 지나치게 순수한 애정으로 말끄라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르네.”

 

기운 없는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트리고 있던 인어가 눈을 끔뻑거렸다. 르네. 한 번 더 이름을 부르자 인어는 자그맣게 눈을 휘었다, 매그너스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마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짧게, 소리 없는 대답을 들은 듯도 했다.

 

 

 

 

 

 

난 말이다, 바다에서 죽을 거다.

너와 함께 갈 거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