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icholas Brown
X
Sirius
< 니콜라스 브라운 x 시리우스 >
< 니콜라스 브라운 x 시리우스 >
-페이지-
*십대의 일반인 니콜라스 브라운이 나옵니다.
*굳이 따지자면 원작의 어릴 적 니콜라스 브라운이 이 글에서의 니콜라스 브라운입니다.
짧게 코를 찡그렸다. 어딘가에서 달달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향 사이에는 이질적인 냄새가 섞여있었다. 좀 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골라내니 영문 모를 물비린내였다. 바다가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특이한 냄새였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랬다. 마치 그걸 놓치지 말고 잘 각인해두라는 듯이 그 특이한 냄새는 제 후각을 사로잡았다. 좋은 향기보다 미약했으면서도 강렬하게 제 신경을 끌어 모았다.
“길에서 그러고 있으면 위험하다.”
누군가가 뒤에서 빠르게 제 앞을 지나간다 싶었더니 제 앞에 멈춰서 몸을 숙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제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시선이 맞고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잡아 세웠어도 됐을 것을 굳이 얼굴을 보고 천천히 말을 전한다. 이 사람은 몇 번을 만나도, 그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내도 평생 알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눈을 깜빡이며 빤히 그를 쳐다보다 제 실수를 깨닫고 퍼뜩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실수해버렸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간다. 익숙한 시간이다. 몰래 어금니를 꽉 깨물며 눈을 감자 포근한 온기가 부드럽게 제 머리 위에 얹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눈을 크게 키우고 바라보았다. 그런 저가 어떻게 보인 건지 그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아까의 그 향기가 훅 끼쳐왔다. 깔끔하게 단 냄새는 저 사람에게 나온 것이었나.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물비린내까지도? 아니, 그건 아닐 테다. 그는 굳이 따지자면 늑대와 같은 사람이었기에 깊은 숲속의 냄새가 어울렸다.
눈을 끔뻑여 허튼 생각을 떨치고 중요한 사안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곳에는 또 무슨 일로 온 것일까. 아니, 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에 저는 의문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비호하고 후원해주는 자다. 저는 제가 불편하다고 그 저의를 짐작하는 일을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처음 만난 날에 바로 뒤를 봐주겠다며 이쪽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준 사람이니 늘 기색을 감추고 얌전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실제로 이런 행운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고, 저는 이 위치를 잃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지내는데 불편한 것은.”
따뜻한 손이 머리를 떠나더니 천천히 글자를 그렸다. 입술의 움직임에 맞춰서 선을 그리는 것이 의아했다. 그 행동이 저를 이해시키지 못한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더니 왼손을 곧게 펴 코 가까이에 세우고는 미안하다며 상쾌하게 사과를 했다. 그가 저에게 잘못할 일을 했던가? 눈을 가만히 끔뻑이고 있으니 그는 다시금 제 머리를 쓰다듬는다. 순서가 틀렸다는 말을 하며 제 손에 영문 모를 책을 쥐어주고, 그렇게 소중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젠가 봄이 이랬던 것도 같았다.
“괜찮다면 네 첼로 듣고 싶은데.”
잔잔히 웃던 그 사람은 손을 거둬 한참을 뜸들이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첼로. 저에게 가고 싶은 방향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 낸 덕분에 손에 넣은 것이다.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은 상대는 따로 있었지만 제게는 그를 거부할 힘 같은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납득한 다음에는 바닷바람을 가득 머금어 벌써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지, 하는 다른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저는 제 손으로 소리를 잡아내는 것에 서툴렀던 터라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악기에 돈이 많이 든다는 것쯤은 이런 저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못하게 되는 것은 아직 싫었다. 아직 들려주지 못했기에 지금은 너무도 일렀다. 그렇게 짧게 망설였을 뿐인데도 그는 제 마음을 훤히 아는 듯, 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초대는 괜찮을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사람은 비로써 쭈그린 몸을 펴고 제게 인지도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며 그 위로 손을 얹으면 그는 제 거친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제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몇 번 걸으며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 걸음에 맞춰진 간격이었다. 천천히 내딛어지는 그의 발을 보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눈동자에 담았다.
“글 배우고 싶은 생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제 움직임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수화책이다. 그나마 편해질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고 제 왼손에 쥐어진 책을 가만 내려 보았다. 그는 제게는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놓고 싶지는 않았다. 맞잡은 손에 힘을 들어간다. 고개를 들어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몸 안쪽으로 가까이 품고서야 그는 눈을 제게서 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어김없이 검은 바다에 악기 케이스를 들고 나왔다. 여전히 바람만이 저를 반겼지만 그걸로 좋았다. 현의 진동을 느끼고 활을 들었다. 첼로가 손에 익고 계속해서 행해온 가벼운 제 일탈이었다. 들어줄 이 하나 없었지만 여전히 좋은 울림이다. 이 울림은 당신의 가슴에서 어떤 소리로 울려 퍼지게 될까. 저에게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세계지만 들려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토록 간직해오고 있다.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는 청중을 기다리며 몇날며칠을 바다를 벗 삼아 소리를 갈고 닦았다. 언젠가는 그 청중을 맞이하고 그에게도 제 울림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 선착장에서 활을 놀렸다. 제 기준음은 바다 속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겠지. 어쩌면 그마저도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를 찾아 끊임없이 활을 움직였다. 어디를 가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는 제 기준음이었다. 제가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으면 그 누가 붙잡아주랴.
연주를 가장하여 가다듬는 마디가 끝에 다다름과 함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일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활을 쥔 상태로 화면이 환하게 빛나는 휴대폰을 꺼내 자판을 두들겼다. 그는 어떻게 제 이런 일탈을 알고 있는 걸까. 긍정의 답을 보낸 문자와 달리 악기 케이스를 채우고도 저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에게 어깨가 잡힐 때까지.
역시 근처에 있었구나. 그에게 풍겨져 나오는 단내가 더욱 짙어졌다. 화는 아니었지만 화가 분명한 감정을 표출하며 그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날이 밝아도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간만에 집안 가득히 온기가 돌았다. 군침 도는 냄새가 아침부터 공기 중에 가득했다. 제 몫이 전부였다. 그는 화가 났음에도 제 먹을 것을 챙기고 방에 있는 것일까. 식탁에 앉기 전에 그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방문으로 가 작게 노크를 했다. 그에게 손목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그리 했을 것이다. 제가 눈을 키우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작게 한숨 쉬며 손목을 놓고 손으로 유려한 선을 그리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비어있는 방엔 함부로 노크하지 마라.”
이유를 묻는 제 손길에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에게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누그러진 잔소리를 잔뜩 들으며 아침을 입에 담았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
평소와 같은 시간이 되었지만 문고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오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가 닿았었다. 그를 처음으로 거역해보기로 했기에 숨 쉬는 것조차 저에게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럼에도 저는 알아야 했다. 그는 저에게 숨기는 것이 있고 그것은 제 감각에 따르자면 기준음과 연관된 무언가일 것이다.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원을 받으며 몇 년을 살아온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알 수 없었고 의문은 쌓여만 갔다. 타이밍을 놓친 질문은 구석에 처박혔다. 그가 오면 공기를 매우는 달콤한 향기 속에 자리하고 있는 물비린내는 여전히 정체를 몰랐다. 손에 들린 가벼운 악기 케이스가 평소보다 무겁다. 손바닥에 축축이 배어나온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문고리를 돌렸다. 달이 밝은 밤이다. 제 주머니 깊은 곳에 박혀있는 휴대폰이 무겁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달빛을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느렸다. 들고 온 악기 케이스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기에 달리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검은 바다와 밝은 달빛을 배경으로 그를 그렸다. 그를 그리다 바다 속에 있으리라 생각되는 제 기준음을 떠올려보았다. 둘 다 똑같이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제가 닿을 수도 없었다. 감히 제 손을 뻗을 수가 없어서 속으로 삼켰다. 본디 바라는 것도 안 되겠지만 그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기에 삼켰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도 꾸역꾸역 삼켰다. 저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다 소용없게 될 것을 알았으니까.
더 깊은 생각으로 빠지기 전에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화면이 환하게 빛나는 휴대폰이 어둡다. 자판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번에도 더욱 짙어진 단내와 함께 저를 찾아올까. 어쩌면 이 일탈을 막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내버려둔 휴대폰의 진동이 끊이질 않았다. 처음부터 무언가 다른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이었나 보다.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어 휴대폰을 꺼내든 순간 팔이 잡아채졌다. 모르는 사람이 가득이다. 그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그의 모습이 보였다고 생각했을 때, 저는 내던져졌다. 인식했을 때는 이미 검은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느리게, 검은색이 시야 가득히 채워진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차가운 물이 제 몸을 휘감았다. 코로, 입으로 짠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지독하게 부산스러운, 평소와 같은 고요한 세계다. 들릴 리도 없건만 멀리서 이름이 불리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 -!-! -!”
아, 익숙한 얼굴이다.
무엇을 저리도 외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익숙했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싫은 고요함이다. 얼굴이 잡힌다 했더니 바다를 치우고 검게 물든 눈동자 두 개가 제 시야를 가득 채웠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여전히 그가 이마를 맞대고 저를 보고 뭐라 외치고 있다. 소용없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려던 순간 하얀빛이 저를 쏘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빛을 바라보니 검은 인영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새 짙어진 달콤한 향에 가려진 물비린내 사이로 비릿한 냄새가 파고들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화약과 피 냄새가 섞여 코 안의 점막을 찔러오고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는 제 검은 겉옷을 던져 빛을 가리고 저를 안고 빠르게 물살을 갈랐다. 무언가 뚫고 지나간 탓에 난 옷의 구멍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물보라가 이는 사이로 검고 매끈한 무언가가 시야에 잡혔다. 제 손에 잡히는 것은 보드라운 살결이었다. 피로 끈적끈적해진 새하얀 맨살. 이윽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그 모습은 꿈에서도 놓지 못한 제 기준음이었다.
다친 팔로 저를 꽉 안고 조용히 헤엄치던 그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맴돌고 있을 선착장에서 떨어진 부둣가에 도달하고서야 저를 지면에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스쳐지나가는 밤바람에 몸이 떨렸다. 제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가만 바라보던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입을 연 그 사람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제 몸에서 불필요한 물이 그에게로 가 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뽀송뽀송해졌다. 달빛이 다친 팔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비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올리며 천천히 입과 함께 글자를 그렸다.
“조심히, 서둘러 돌아가라.”
자신의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리는 바람에 땅의 끝을 잡고 그에게로 짧게 소리를 내었다.
“시, 리우스…씨.”
그는 제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저를 보지 않았다. 그에게 붙어있는 사람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제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제야 저를 흘깃 본 그 사람은 다시는 뒤를 보지 않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조용히, 파장조차 울리지 않고 모습을 감추었다. 단단히 저를 붙잡고 있는 힘이 원망스러웠다.
그 후로 오래토록 그는 제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저는 찬란한 봄 속에서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다.
***
대충 걸터앉아 가만히 바다가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간만에 찾은 바다였다. 오랫동안 향하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발걸음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어쩐지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 것 아닌 잡생각에 잠겨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 햇빛이 반사되는 것에 눈이 시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에서 달달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향 사이에는 이질적인 냄새가 섞여있었다. 특이한 물비린내다.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그가 서있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렇게 다시 이곳에 서있었다.
“오랜만이다.”
드디어 제 첫 곡을 연주할 날이 왔다.
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