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平井 大地 X 滑津 舞

​< 히라이 테라 x 나메츠 마이 >

​-페이지-

*여성 드림주 X 여성 드림캐의 조합입니다.

*나메츠 마이 루트 드림주 (히라이 테라) 외에 다른 드림주가 잠시 등장합니다.

*드림주가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는 식의 발언을 자주 합니다.

 

 

 

 

 

“히라이 상.”

 

나지막한 목소리가 몇 번이나 제 이름을 부르며 옷자락을 잡아당겨서야 겨우 제가 서있는 장소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제가 지금 서있는 곳은 현재 재학 중인 학교의 배구부가 사용하는 체육관. 일명 철벽양성소. 두 팀으로 나누어서 연습시합까지 벌이고 있는 이곳에서 제가 했어야 했던 것은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제 손의 노트는 깨끗했다. 보아야 할 경기는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정신을 팔아넘긴 제 잘못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혼날 것이 분명했다. 이 시기에 꾸중까지 들어버리면 정말 죽고 싶을 텐데…. 공책을 양손으로 잡아 올려 제 얼굴을 가리니 옆에서 작게 소근 거려온다.

 

“히라이 상이 담당한 부분 내가 따로 적었으니까.”

 

공책을 내리고 밝아진 얼굴로 감사인사를 전하려 했다. 제 얼굴을 낙하지점으로 삼은 공만 아니었다면 그 작은 손을 붙잡고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을 것이었다. 큰 소리를 내고 멈춰선 공은 체육관 바닥에 떨어져 또르르 굴러갔다. 어딘가 따뜻한 액체가 느리게 콧속을 흐물흐물 휘저으며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공책 위로 붉은색이 방울진다. 아픔은 그 다음에 찾아왔다.

 

“죄송함돠!!”

 

허리를 직각으로 접는 동급생을 보고도 입은 열지 못해서 그저 코를 감싸 쥐고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시야가 흐린 것을 보니 눈물이 고인 것도 같다. 어디까지나 이번 일은 제 잘못이었지만 코가 아파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살짝 젖히라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무서워서 코를 부여잡고 숙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한 손이 휴지를 내밀었다. 손끝만 보아도 그 주인을 알 수 있는, 그런 손이었다. 기다린 것처럼 마음이 흘러넘쳤다. 얼굴선을 따라 방울방울 타고 흘러내리는 마음은 제가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하고 턱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를 둘러싼 무리에 당황스러움이 눈물처럼 번졌다. 죽고 싶다. 허리를 접으며 사과하던 동급생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향했던 것도 같았다. 진심으로 죽고 싶어졌다. 이대로 쪼그라들어 사라져버리면 좋을 텐데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머리를 두고 있는 제 큰 몸은 여전히 철벽에게 둘러싸여있다.

 

 

밖으로 나와 건네받은 휴지로 코를 잡아 누르며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손이 머리 위에 얹어졌다. 아, 당신의 손이다. 숨이 멈추며 몸 전체가 굳었다. 시간이 느려진 건지 천천히 감겼다 떠지는 눈꺼풀이 생생했다.

 

“진정됐어?”

“ㄴ, 네. …네.”

 

아픔은 어느새 잊히고 목소리만이 남았다. 목소리만이 빙빙 돌면서 제 세상을 가득 채운다. 밝고 따뜻한 세계다. 당신은 영원토록 알 수 없을, 그런 세계다. 눈물이 차올랐다 행여 당신을 흐려지게 할까 순식간에 지워지고 웃음이 떠올랐다. 역시 죽는 것은 오늘도 보류인가보다. 조심스럽게 붉게 물든 휴지를 치우고 제 얼굴을 잡아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에 주먹을 꽉 쥐고 한없이 바라보다 황급히 눈을 떨어뜨렸다.

 

가까이에서 저를 봐주고 있다.

저를 걱정해주고 있다.

저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었다.

 

목이 간질거린다.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워져서 입 꼬리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예전에 심하게 앓았을 때처럼 열이 올라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 오직 당신만이 제자리에 서있다. 그것으로 저는 더없이 충만해진다. 이렇게 당신으로 나는 오늘 하루를 또다시 살아간다. 당신만큼은 알 수 없도록 저를 숨기고 당신을 보고 혼자서 살아간다.

 

“아프면 미리 말해.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혼자서 괜찮지?”

 

마칠 때까지 남아있겠다고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려다 작게 꾸중을 들었다. 돌아가겠다고 답을 한 후에는 이쪽이 누구를 붙여주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가방을 들었지만 체육관에서 금방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옆에서 저를 신경 써주던, 저를 알아차린 친구가 제 상태를 몰랐다며 사과를 해왔기에, 반 친구가 제 연습을 뒤로 하고 체육관을 함께 나서려고 했기에, 서툰 동급생이 안절부절 못하며 저에게 계속 허리를 굽혀왔기에, 체육관에 있던 전부가 저를 한 번씩은 꼭 잡아서 그 모든 사람에게 하나하나 답하고 나서야 혼자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게 아닌데. 또 피해를 끼쳐버렸지만 평소와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또다시 시야가 흐려져서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소매로 눈을 비볐다. 눈이 맑아지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교문은 제 뒤에 있었다. 해가 떠있는 동안 교문을 나선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제 목을 매만졌다. 울렁거린다. 이곳이 좋다.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쏟아지는 빗방울이 선명히 보인다. 비디오를 느리게 재생시킨 것만 같은 감각이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면 속눈썹 위로 빗방울이 앉았다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혀 부서지는 빗소리가 저를 때리며 울린다. 그제야 비가 내리고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면 비어있는 차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굴러가다 벽에 가로막혀 삐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차체가 긁히며 나는 귀를 찌르는 소리가 멀어진다. 모든 것이 느리고 선명했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겠구나.

 

눈물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빗속에서 알이 굵은 진주가 되어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구르다 물웅덩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줄기가 아프다. 끝이다.

 

언젠가 이 날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몇날며칠을 가슴에 묻어두고 앓다가 사라질 터였다. 물거품이 되어 흩어지는 날에도 그렇게 앓다가 갈 터다. 진주가 끝없이 부서지며 아래로 내려앉는 것을 보면서 억지로 입 꼬리를 잡아 올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처음으로, 태어나 숨쉬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다시없을 마음을 다해 하등 쓸모없는 저에게 감사했다. 다른 이와 확연히 다른 변종이었던 게 싫었다. 당연히 눈에 띄는 존재가 저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어째서 제게 그런 힘이 주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랬던 저가 그 힘을 가진 자신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오랜 방황 끝에 만난 답은 이곳이다. 이제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이곳. 나의 세계.

 

좋아했어요.

좋아해요.

좋아할 거예요.

 

후회를 해도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당신을 지킬 수 있는 나라서 다행이에요.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제가 만들어 낸 것 중 제일 아름다운 진주를 손으로 받았다. 멀리서 구르는 우산을 잡아 그 손에 단단히 쥐어주었다. 제 마음과 함께. 비에 젖어 엉망이 된 옷에서 쓸모없는 물기를 제 손에 모았다. 물방울을 소중히 받아서 입을 맞추고 제 권속으로 돌려보내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은 가져가 당신을 추억할 수 있기를. 잡은 당신의 손을 놓는 손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제 눈에도 훤히 보였다. 이제 갈게요.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요.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책임지고 데려다줘야지.”

 

잡혔다. 몸을 돌리고 떠나려고 했는데 잡혔다. 잡힌 손목으로부터 열이 피어올랐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니다. 이 비를 내리게 한 원흉이다. 다치게 할 뻔했다. 모든 걸 들켰다. 그럼에도 남아있을 수 있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나로 괜찮은 거예요?”

“너라서 괜찮은 거야. 어서 가자. 비 그만 맞고.”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저로도 좋다고.

 

안녕,

정말 좋아하는 나의 세계.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