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赤司 征十郎
X
西海 ミド
< 아카시 세이쥬로 x 니시우미 미도 >
-새주-
《인어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열일곱 때 일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는 해안가가 근처에 있는 마을로 이사를 갔다. 혈혈단신이었다.
몸이 약해 요양차 건너가는 건강상의 이유는 아니었고 그저 학교가 그 뿐이라 간 거다. 애초 사는 동네는 흔히 말하는 촌구석이었는데 학업을 잇기 위해 이사를 오면서 부친의 폭력에 바로 갈라선 모친은 내게 피땀을 흘려서 번 돈을 부쳐주기로 했다. 모친의 직장은 집에서 이미 충분히 멀었으므로 그보다 더 먼 곳에서 같이 사는 건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도시로 나갔다가 밤 열한 시면 들어와서 부업으로 바느질을 하는 모친의 열망은 내가 대학에 가는 것 단 하나 뿐이었다. 마을에는 사촌에 팔촌에 이웃에 어떤 연으로든 다 안면이 어느 정도 낯설지 않은 사람들만 살았으므로 날 안심하고 맡기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마을은 거리를 나가면 늘 보는 사람만 있을 만큼 사람 수가 적었고 조금만 걸으면 비포장도로에 숲이며 자연이 반겼다. 나는 짐을 옮긴 첫 날부터 마을이 맘에 들었다. 대개는 인사뿐 군더더기 있는 말 따위를 걸지 않는 사람들의 풍조 때문이었고 그 다음은 경관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올라간 고개 위에서 본 마을은 작은 우물 같았으며 산과 들에서 본 모든 잎의 빛깔은 무지개 같았다. 가난과 이유 없는 죄악감에서의 일시적인 자유와 평화는 그저 반갑기만 했다.
일주일을 적응하고 같이 하교할 친구도 쉽게 사귀었다. 사교성이 드문 편이었지만 애들 수가 적어서 필연적으로 모두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유순하고 다정했으며 가끔 야외에서 하는 수업은 즐거웠다.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막연하게 빠르게. 그러다 언제나처럼 사츠키와 하교하고 집에 와 외투를 벗으면서 문득 내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두 달 간 마을의 온갖 곳을 다 돌아다녔는데 꼭 하나를 빼먹은 것이다. 그게 바다였다.
기껏 해안가 근처에 있는 마을로 이사를 왔으면서 부러 바다에 발길을 트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생경한 기분이었지만 그대로 나는 그 날 저녁으로 클램 차우더를 이르게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혼자 조개와 소라를 찾으러 갔다. 무료할 때 줄에 꿰어서 목걸이나 만들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찬바람이 나부껴서 목도리를 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저 흰 사구.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밀려오는 파랑과 그 하얀 포말들은 시종일관 기침을 하며 모래를 덮쳤으며 주먹보다 작은 게들은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맨손으로 조개껍질을 주워 모래를 털고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해가 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일어서서 해지는 걸 봤다. 근처의 커다란 돌 바위가 시야를 가리기에 그 앞으로 걸어갔더니 바위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벗은 등. 좀 말라서 등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데 어깨는 좀 넓고 팔에 근육이 붙어있다.
바닷물이 말라 소금이 붙은 피부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매끈한 뒷목 위로 살랑거리는 붉은 머리카락.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마을에 이런 애가 있었나? 빨간 머리는 도통 본 기억이 없다. 용기나 오지랖은 없으므로 너는 누구냐 물을 입도 닫고 있을 때 마침 그 붉은 애가 고개를 돌렸다. 머리처럼 눈도 빨갰다. 얼굴이며 모든 피부는 하얀 백색이었고 마치 도자기 같았다. 그리고 그 몸 아래는... 붉은 비늘로 덮여있었다.
절로 겁을 집어먹었는지 내 얼굴 근육이 굳은 게 느껴졌다. 설마 꿈인가 싶었다. 남자애 다리가 없었다. 아니 있는데 사람 다리가 아니었다. 그건 물고기의... 그것이었다. 지느러미였다.
발이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혀가 사막이 되었고 등골에선 차게 식은 땀이 호수가 되었다. 기이한 현실이지만 마음이 날로 침착해지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상정을 하나 세웠다. 밥을 이르게 먹고 바다에 가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데 마침 꾼 꿈에서 바다가 나왔고 내 충만한 상상력으로 다리가 물고기 지느러미인 남자애가 나온 거다, 라는.
마냥 안일하지만 그 이상으론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고 현실로 와 닿지도 않았다. 인어? 내가 아는 인어는 여서 일곱 살 때 안데르센 동화에서 본 인어 공주가 전부였다. 동화는 전부 거짓이고 상상력과 어린 감성만 고취시킬 뿐이다. 인어라고?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인어지? 내가 그 동화를 그렇게 좋아했나?
얼굴과 몸을 샅샅이 훑는 시선질. 번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그 인어 남자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긴장감은 저 눈빛이 이유였고 나는 꿈속의 인어에게 지기가 싫어져서 그 눈을 마주 보기로 했다. 새빨간 두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그러자 걘 아예 몸을 내 쪽으로 틀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주 턱을 괴고 나를 보는 시선은 해저처럼 깊었다. 그런데 웃는 입은 꼭 애였다. 장난기가 가득한 입술이었다. 나를 무슨 밤마다 티브이에서 하는 환상특급을 보는 눈으로 보았다. 눈웃음도 살살 치면서. 어쩌면 좋지. 붉은 남자애 뒤로 해가 다 졌다. 바람이 불고 남자애 머리가 흔들리면 내 주머니 속 조개들도 꿈틀거렸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어느 울림이 뇌우처럼 울렸다. 집에 가야 한다. 꿈에 집은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 생기는 일들이 더 불안했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 로 끝나는 꿈이 나았다. 쟨 생긴 건 괜찮게 생겼지만 그건 허울이고 실은 인간을 잡아먹을지도 몰랐다. 꿈이니까 비현실적인 일들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끝나는 꿈은 정말 최악이었다. 드디어 발이 떼이기에 뒷걸음질부터 쳤다. 뒤를 돌아 내가 건너온 길을 보았다.
―가는 거야?
내 발자국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