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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ton

X
Choco

<메타톤 X 초코>

- Cake_Choco -

*메타톤 시점입니다.

*드림주가 인어입니다.

*(주의) 폭력, 유혈 매우 많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인간들의 유행, 그들이 좋아하는 문화.

지하세계와 현저하게 다른 전설들과 알피스가 읽던 책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역사들.

그 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흔든 건 ‘인어’였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 그러나 실제로 존재할 거 같은 동물. 상반신은 인간여자의 모습. 하반신은 물고기의 꼬리. 이렇게 매력적인 동물이 또 있을까.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인간들이 그린 그 모습과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를까? 얼마나 매력적일까? 나는 나에게 끝없이 질문했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인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 인어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메타톤!”

“……. 아. 알피스. 무슨 일이에요?”

“네가 하도 멍하니 있기에 부른 거야.”

“제가 그렇게 멍하게 있었어요?”

“그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알피스는 나에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연구 자료가 이리저리 흩어진 책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궁금해졌다. 알피스는 인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까? 궁금함을 못 이긴 나는 알피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알피스자기.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인어는 실제로 존재할까요?”

 

내 질문에 알피스의 연구하는 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인어가 실제로 존재할까요?”

 

알피스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알피스의 눈빛은 당황과 의아함이 섞여있었다. 왜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걸까. 그 눈빛이 이해가 안가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알피스는 글쎄, 라고 말하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인 뒤 다시 연구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뭔가 조금 허무해진 나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알피스의 집 근처가 바다여서 그런지, 산책을 하기엔 아주 좋았다.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과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마침 해도 저물어가는 시간이어서 사람도 없고 무척 한적하였다. 한참 노을로 물든 바다를 감상하며 걷던 그 때, 해변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그림자는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힘이 빠진 바다생물이 지쳐서 해변가로 흘러 들어온 것이 분명하였다. 그대로 놔두면 죽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나는 그 그림자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림자에 다 다른 나는 그대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다 생물이 맞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평범한 생물이 아니었다.

상반신은 여자인간의 모습,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인 인어.

그 인어가 내 눈앞에 있다. 쓰러진 상태여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조심스레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인어의 모습을 살폈다. 남색의 지느러미에 보랏빛이 나는 비늘, 물이 덜 말라 촉촉한 갈색 머리카락과 긴 속눈썹……. 처음 본 인어의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보통의 바다생물이었다면 바다로 돌려보냈겠지만, 나는 그 인어를 안아들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알피스는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느라 내가 들어온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며 방으로 들어가, 인어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인어를 방에다가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인어는 물속에서 사는 생물이니, 최대한 물이 많은 곳에 있게 해야 하겠지. 지상에서 바다와 호수 대신 물이 가장 많은 장소라고 하면..........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인어가 깨어나지 않게 조용히 방을 나섰다.

 

나는 알피스에게 지하에 있는 커다란 수족관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였다. 나의 말에 알피스는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고, 그냥 이번 신곡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 위해서라고 얼버무렸다. 알피스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기꺼이 나에게 수족관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

알피스의 허락을 받은 나는 고맙다고 한 뒤 방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인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누워 있었다.

나는 다시 알피스의 눈을 피해 인어를 다시 안아 올려 넓은 욕실로 데려갔다. 알피스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꽤 넓은 편이라 욕실이 세 개가 있었는데, 거의 구석 쪽에 있는 욕실은 알피스가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족관이 만들어 질 때 까지는 인어를 데리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욕실에 다 다른 나는 인어를 이동식 욕조에 넣어준 뒤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살짝 마른 인어의 피부와 지느러미를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은 탓인지, 인어가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 한 검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곧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인어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눈치 챈 건지 벌벌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저……. 괜찮아요?”

 

나는 인어에게 살며시 다가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인어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나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 뒤 더 이상 나를 보기 싫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나는 더 이상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수도꼭지를 잠가준 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혼자 있는 편이 더 좋겠죠? 좀 있다 진정되면 다시 찾아 올 테니까…….”

“나를 바다로 돌려보내줘요.”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지금 당장 바다로 돌아가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준 뒤, 한 손으로 인어의 목을 쥐었다.

인어의 목을 꽉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인어는 인상을 쓰고 끅끅거리며 미친 듯이 괴로워하였다. 끅끅거리는 신음소리 사이로 살려달라는 인어의 애원이 들려온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꽉 쥐고 있던 인어의 목을 놓아주었다. 인어는 괴로워하며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그 모습에 내 손끝이 아려온다. 나는 두 손으로 인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준 뒤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이젠 그러지 않을게요. 그러니 당신도 더 이상 반항하지 말아요. 알겠죠?”

 

인어는 초점이 없는 검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나는 자주 욕실에 들렸다. 알피스는 그 근처도 오지 않으니 들킬 일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인어에게 인간들이 먹는 음식 같은 걸 가져다 줬으나 입에 대기도 싫은 건지,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였다. 하지만 내가 다정하게 어르고 달래면 몇 숟갈은 겨우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몇 번 손찌검만 하면 금방 해결 되었다. 손찌검을 한 뒤 부드럽게 말을 건네면 인어는 곧잘 내 말을 잘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인어와 대화를 가진다. 일방적으로 내가 떠드는 것뿐이지만.

하지만 가끔씩 인어가 내 말을 반응을 해주니까, 그렇게 무의미하거나, 나쁜 시간은 아니다.

 

“나는 ‘메타톤’ 이라고 해요. 당신은 이름이 뭐에요?”

 

내 말을 들은 인어는 고개를 돌려 살짝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묻냐는 눈빛이다.

나는 인어에게 웃어 보이며 손을 들었다. 때리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인어는 몸을 움찔거리며 겁을 먹는다. 당황한 나는 인어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말아요, 자기. 때리려고 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름도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내……. 내 이름은……”

“말하기 싫으면 억지로 말 안 해도 괜찮아요. 언젠가 당신이 먼저 말해 줄 테니.”

 

나는 인어의 볼을 몇 번 쓰다듬다가, 살짝 입을 맞추었다. 인어는 반항을 하지 않고 나를 받아들인다. 인어의 입술은 생각보다 좀 더 마른 느낌이었다. 잠시 뒤, 내가 입술을 떼어내자

인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인어를 두 팔로 꼭 안아준 뒤 사랑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욕실을 나섰다.

 

며칠 뒤, 알피스는 지하실에 수족관이 완성 되었으니 한 번 보라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기계의 울림이 멈추지 않는다. 두근거린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수족관의 빛이 나를 맞이한다. 엄청나게 크고 넓은 수족관 안에 가득 찬 물들은 수중등 덕분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며, 바다 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장식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수족관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어를 상상하니, 기쁨이 멈추지 않는다.

분명 그 인어도 좋아할 것이다. 좁은 이동식 욕조에서 훨씬 더 넓고 큰 수족관에서 헤엄이라니. 게다가 인어가 살고 있던 바다 속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니 고향에 돌아 온 것처럼 기뻐하겠지. 나는 몸을 숙여 알피스의 손을 꼭 잡은 뒤 입을 열었다.

 

“……. 정말 고마워요. 알피스. 나를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수족관을 만들어줘서.”

“네가 좋아해주니 기쁜 걸? 그리고 널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알피스는 쑥스러운 듯, 헤헤 웃어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뒤에 언다인과의 약속시간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반복하고는 급한 발걸음으로 지하실을 올라갔다. 나는 수족관을 감상하는 척 하며 지하실에 남아있었다. 괜히 같이 따라갔다가 인어를 안아들고 나오는데 알피스를 마주치면 매우 곤란하니까. 알피스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듣자마자,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욕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얼른 인어에게 넓은 수족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촉촉하게 젖은 인어의 몸을 감싸줄 긴 수건을 챙겨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온 걸 눈치 채지 못한 건지, 인어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인어가 들어있는 욕조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제야 인어는 내 존재를 눈치 챈 건지, 흠칫 놀라며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떨지 말아요, 자기. 난 그냥 좋은 소식을 전해주러 온 거예요.”

“……. 좋은 소식? 날 바다로 돌려보내줄 건가요?”

“그 말은 안하기로 했잖아요.”

 

말을 마친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식 욕조를 발로 거칠게 밀어냈다. 원래는 그냥 곱게 꺼내줄 생각이었는데, 돌려보내달란 말을 들어 괜히 화가 났다. 인어는 욕조와 함께 바닥에 쿵 쓰러졌다. 욕조는 큰 소음을 내며 금이 갔고, 인어는 아픈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꾹 감으며 몸을 말았다.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이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나는 다정하게 속삭이며 인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뻗었다. 내 손끝이 인어의 뺨에 닿는다. 인어가 눈에 띌 정도로 어깨를 움찔 하더니 곧 이어 입술을 떨었다.

 

“왜 그렇게 떨어요, 자기. 어디 아파요?”

 

나는 작게 속삭이며 손으로 인어의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새빨간 액체가 욕조 바닥을 흥건히 적신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괴로워하는 인어의 여린 몸을 살펴보았다. 인어의 배에 커다란 욕조파편이 깊게 박혀있었다. 손에도 피가 흥건하다.

인어가 커다란 파편으로 자신의 배를 찌른 것이 분명하다.

 

“자기!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왜 이런 짓을…….!”

나는 인어의 배에 박힌 파편을 잡고 천천히 빼어내려 했지만, 너무 깊이 박힌 탓에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인어는 끅끅거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처음 만난 그 때와 비슷하다.

 

“자기, 괜찮아요. 곧 빠질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그러니까…….”

“……. 하지 마…….”

“네?”

“하지 말라고!”

 

인어가 소리를 지르더니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나를 밀쳐냈다. 나는 힘없이 뒤로 밀려나 그대로 주저앉았다. 인어는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신음을 내뱉었다. 엄청난 고통이 전해져온다.

 

“자기…….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요. 내가 빼줄 테니까…….”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어가 다른 욕조의 파편을 집어 들었다. 나는 황급히 인어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내 걸음은 인어의 손보다 한참 느렸다.

뾰족한 파편이 인어의 여린 살결을 파고들며, 갈라진 틈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흐른다.

믿기지 않는 그 장면이 나의 기계관절을 멈추게 만들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내 눈동자가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성대가 고장 난 것처럼 뚝뚝 끊겨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저 스스로를 찌른 인어는 다시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자기……?”

 

나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인어에게 다가갔다. 인어는 아직 살아있는 듯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떨리는 손으로 축 늘어진 인어를 안아 올려 모습을 살폈다.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자기. 정신 차려 봐요. 죽으면 안돼요. 자기. 조금만 더 버티면 알피스가 와서 당신을 치료해 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 필요 없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기는 나랑 행복하게 살아야죠.”

“행복……. 하게?”

“그래요. 자기 나랑 행복하게 살아요. 사랑해요, 자기.”

 

말을 마친 나는 살짝 웃으며 인어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였다.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왕자님이 공주님에게 입을 맞춰주면 인어의 상처가 나을지도 모른다. 입술이 닿을 거리가 되자, 인어가 차가운 숨결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당연하죠. 자기.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자기도 나 사랑하죠?”

“ ……. 나는…….”

 

인어의 말이 점점 흐려진다. 나는 몸이 점점 식어가는 인어를 끌어안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숨결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인어에게 사랑한다고, 절대 잊지 못할 거라며 계속 속삭여줬다. 나의 속삭임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인어가 팔을 들어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작아지는 인어의 숨결 사이로 말이 들려온다. 분명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어를 품에 안아 올렸다. 그 작고 사랑스러운 속삭임을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다.

인어의 얼굴이 내 귓가에 가까이 닿았다. 숨결 사이로 인어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린다.

 

……. 곧 이어 인어의 입술이 닫히고, 내 어깨를 감싸던 그 손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어의 마지막 말이 내 귓가를 통해 서며 들어와 몸속의 모든 기계들 사이로 퍼져 메아리처럼 울린다.

 

 

-내가 너 같은 괴물을 사랑할 리가 없잖아.

 

이 뒤로는 기억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방 바깥에서 간간히 들리는 울음 섞인

알피스의 한탄에 의하면, 내가인어의 시체를 끌어안고 앉은 자리에서 미친 듯이 끅끅거리며 웃고 있었다는 것 뿐.

나는 알피스에게 끈질기게 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잘 차려진 넓은 방에 넣고 문을 꼭 잠가버렸다. 나를 왜 가두냐는 말에도 역시 대답은 없었고, 그 순간 알피스와 나의 사이가 한달음에 멀어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피스. 알피스. 알피스. 부디 대답해줘요. 내가 그 때 그냥 미친 듯이 웃기만 했나요?

나를 왜 가두는 거죠? 내가 사랑하는 인어는 어디로 데리고 간 건가요? 알피스가 다시 살려주기 위해 실험실로 데리고 간 건가요?“

 

방에 갇힌 나는 문 너머에서 울고 있는 알피스에게 끝없이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알피스의 울음소리와 언다인에게 전화를 하며 한탄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알피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부디 대답이 돌아와 주길. 내일이면 대답이 꼭 들려오길.

 

오늘 밤도 꾹 닫힌 문 앞에 앉아 알피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알피스는 자러 갔는지, 바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넓고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있는 이 시간이 하루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래. 곧 있으면 이 문이 열리고 알피스가 웃으며 날 맞이하겠지. 그리고 다시 살아난 인어에게로 날 데리고 갈 거야.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인어의 품으로.

그 인어는 나에게 웃으며 사랑한다고 해주겠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고 할 거야. 그럴 거야. 분명히. 나는 인어의 모습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 메타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알피스가 부른 건 절대 아닐 것이다. 알피스는 항상 나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불러주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활짝 열린 창가로 걸어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모래사장과 검게 물든 바다와 별이 가득한 하늘뿐이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 하였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 슬픈 목소리.

 

“여기에요. 메타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내가 미친 듯이 그리워하고, 또 미친 듯이 사랑하는 인어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두 눈에 들어오는 인어의 모습이 믿기지 않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메타톤. 어서 이 쪽으로 와줘요.”

 

인어의 사랑스러운 말에 나는 창문을 넘어 모래사장을 밟았다.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모래사장 덕분에 몸이 부서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인어에게로 달려갔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미소 짓고 있던 인어는 나를 반기듯이 두 팔을 벌렸다. 나도 두 팔을 벌려 인어를 끌어안았다. 마침내, 인어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어의 두 팔이 나의 등을 감싼다.

언제나 내 눈을 피하고 무서워하던 인어가 나를 다정하게 안아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인간들의 ‘흐느낌’ 이라는 감정을 흉내 내며 인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자기. 정말 미안해요. 그 때 내가 자기를 좀 더 빨리 지켜줬더라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메타톤. 난 지금 당신의 품에 있는데.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자기……. 사랑해요, 자기”

“나도 사랑해요. 메타톤.”

“정말……? 정말이에요? 정말로 날 사랑하나요?”

“당연하죠. 내가 메타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정말로?”

 

나의 애절한 물음에 인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맑은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손을 들어 인어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다가 눈을 감고 입을 맞추었다.

딱딱한 내 기계입술이 인어의 따뜻한 입술을 감싼다. 인어는 그 감촉이 싫지 않은 듯 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입술이 파고들 듯이 겹쳐진다. 나는 맞닿은 입술을 몇 번 짓누르다가 살짝 떼어내 인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어는 조금 쑥스러운 듯, 뺨을 붉히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기. 정말 사랑해요. 이젠 제가 지켜줄게요.”

“정말로? 내 곁에 계속 있어 줄 거야?”

“물론이죠, 자기.”

“그렇다면……. 나와 함께 바다로 함께 갈 거야? 그래줄 수 있어?”

“……. 물론이죠.”

“정말로? 정말 나와 함께 바다로 가 줄 거야?”

 

나는 대답 눈웃음을 지으며 인어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인어는 놀란 듯,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해맑게 웃어주었다. 나는 인어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맞추었다. 인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일렁이더니 곧 주변이 어두워졌다. 바다 깊은 곳으로 점점 몸이 빨려 들어간다.

 

“메타톤. 사랑해요.”

 

인어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인어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 품에 의지 하듯이 안겼다. 이걸로 잘 된 것이다. 그래. 이젠 나의 죄책감도, 슬픔도, 그리움도 이 바다 속에서 전부 물방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인어와 함께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알피스의 기록일지 ---번

사라진 메타톤이 발견 된 장소는 지하실의 수족관이었다. 죽은 인어를 꽉 붙들고 제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 틀림없다. 소식을 들은 언다인은 무엇 때문에 메타톤이 그런 건지 알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을 거 같다. 무엇 때문에 메타톤이 그 수족관으로

뛰어 든 건지. 인어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과 죄책감 때문이겠지.

 

나는 인어와 메타톤을 꽃이 가득한 관에 넣어줬다. 하얀 들꽃 속에 파묻힌 그 둘은 금방이라도 깨어 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나는 눈을 감은 메타톤의 옆모습을 잠시 쓰다듬다가 관을 닫았다. 메타톤과의 이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내일이면 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집에는 있을 수 없다. 이 곳엔 메타톤과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물건 하나하나에도 메타톤의 추억이 담겨있다. 나는 메타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메타톤과 영원히 이별 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사진들 위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다.

 

이 곳을 떠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바다를 돌아보았다. 미어지는 내 마음을 모르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 바다가 조금 미워질 것 같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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